정유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에너지 패권의 이동, 국제 유가 하락 등의 환경 변화에 따라 이들의 ‘화학화’ 작업에도 가속이 붙었다.

   
▲ 사진=뉴시스 자료사진

올해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국제유가 하락이다. 국내 의존도가 가장 높은 두바이유의 하락으로 50달러대에 진입하는 등 유가의 추락은 진행 중이다.

이라크 원유판매가격 인하와 OPEC의 감산합의 불발이 유가하락에 불을 지폈다. OPEC은 제166차 정기총회에서 기존 3000만배럴의 생산목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의 셰일오일의 생산이 증가와 함께 감산 추진이 OPEC의 시장점유율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패권을 위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 유가 하락, 정유업계 ‘직격탄’…화학화로 탈출구 모색

국내 정유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휘발유 1300원대의 주유소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정유사들은 정제 마진 하락으로 인해 원가보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유4사는 올해 1∼3분기에는 9천711억원의 대규모 적자로 영업이익률 -1.1%를 기록 중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정유업계의 연간 적자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업 및 조직 통폐합, 인력 구조조정, 예산 삭감 등의 개혁 작업을 진행했다. 업체마다 10∼20%의 조직 통폐합을 단행했고 예산도 20∼30% 삭감했다.

그러나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유가하락을 반영한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시사해 고비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정유업황 부진과 사업 환경 악화가 계속되자 정유사들은 정유 부문에 집중된 사업구조를 특화된 석유화학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그 예로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카본블랙 사업에 진출했으며 GS칼텍스는 탄소소재 사업과 바이오부탄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SK종합화학을 통해 정밀화학 분야 선도기업인 일본 미쓰비시케미칼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아크릴산 및 아크릴에스테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에쓰오일(S-OIL)은 울산 온산공단에 오는 2016년까지 프로필렌옥사이드(PO)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 정부VS정유업계…나프타 관세에 업계 ‘이중고’

   
▲ 사진=뉴시스 자료사진

장기적인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유 업계의 화살은 고스란히 정부에게 돌아갔다.

올해 주유소협회는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에 반발해 전국 주유소 3029곳의 동맹휴업 의지를 표명한 바 있으나 정부와의 합의로 유보됐다.

그 결과 정부와 업계 관계자 등이 모여 ‘주유소 경쟁력 강화 TF’를 구성해 5차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경쟁력 강화 TF 회의는 올해 말까지 예정돼 있던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TF 명분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했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부터 액화석유가스(LPG)와 LPG·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수입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2015년도 할당관세 운용 방안’을 최근 차관회의에 제출했다.

정유사와 LPG업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 1800억 원에 달하는 세 부담이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석유화학 제품은 중동 에탄가스, 북미 셰일가스, 중국 석탄화학 등으로 원가 경쟁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며 “업계 수익이 향후 2, 3년간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무관세 적용을 유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 국제유가 급락, 화학 업계도 ‘울적’…한화-삼성 빅딜로 ‘들썩’

국제유가 급락의 불똥은 화학 업종도 피할 수 없었다. 유가하락으로 원료의 수입가격이 내려가 비용부담은 줄었지만 최종제품 가격도 인하돼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또 지속적인 가격 하락을 예상한 구매업자들이 석유화학제품 구입 시기를 늦추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은 투자 보류로 이어졌다. LG화학은 4910억원 규모의 폴리실리콘 투자를 보류했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1조791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1조4266억원에 비해 약 24%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도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지난해 보다 약 18% 줄어든 2948억9296만원에 그쳤다. SK케미칼도 1408억원으로 전년보다 실적이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원재료 가격 부담은 줄었지만 제품 가격도 하락했다"며 "4분기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화케미칼이 지난달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인수하는 ‘빅딜’을 단행하면서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화케미칼은 이번 인수로 매출이 18조원대로 늘어나 LG화학을 꺾고 업계 1위로 단숨에 올라섰다.

한화케미칼이 취급한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한화는 기존 에틸렌 일변도의 제품군에서 탈피해 폴리프로필렌·파라자일렌·스티렌모노머 뿐만 아니라 경유·항공유 등 에너지 제품 등으로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삼성의 화학사업을 통합한 후 석유화학사업을 세계 5위권 규모로 육성할 방침이다. [미디어펜=류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