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팬오션 인수 해운업 진출, 곡물메이저 카길에 도전장

   
▲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닭고기기업이 해운사 인수?...연 1조 곡물수입

닭고기 기업으로만 알려진 하림그룹이 해운회사인 STX 팬오션을 인수하게 되었다. 닭고기 장사가 해운업이라니... 하림이 이번 일로 추구하는 것은 카길 같은 국제적인 곡물메이저로 올라서는 일이다. 뜬금없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림의 사업구조를 뜯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림은 이미 상당한 양의 곡물을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림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닭고기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매출액으로 보면 사료가 더 크다. 2013년 기준 닭고기 매출액이 1조원인데 사료 매출액은 1조 4천억원이다. 그 사료를 만들기 위해 연간 1조원의 곡물을 해외에서 도입하고 있다. 해운회사를 인수해서 우선 그 곡물을 직접 실어 나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한국인이 수입하는 다른 곡물들의 거래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한다. 하림의 해운회사 인수는 사료기업으로서 충분히 욕심을 내볼만한 일이다.
 

11살 때 병아리 키우면서부터  47년간 축산외길  

하림의 곡물메이저로의 변신은 2가지의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이 사건으로 한국 농민과 농업의 한계가 또 하나 극복된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그야말로 농민이다. 11살 때 병아리 열 마리 키우는 일부터 시작해서 47년간 축산을 해왔다. 그 농민이 국제적인 곡물 메이저 기업을 만들고자 한다. 박세리 선수가 LPGA 챔피언이 되자 이에 자극받아 골프에 입문한 수많은 세리키즈들이 이제 세계 골프계를 석권하고 있듯이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적인 농기업가로의 길로 들어와 농업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둘째 이번일로 한국의 식량안보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기존의 식량안보 정책은 농지의 전용을 막거나 외국에서의 식량수입을 막아서 국내 식량생산 기반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로 인해 국민이 겪는 불편이 큼에도 불구하고 식량안보에 실제로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식량안보가 중요한 때는 전쟁 때인데, 아무리 생산기반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어떤 농민이 전쟁 중에 농사를 짓겠는가.

   
▲ 하림 김홍국회장이 국제 곡물메이저에 도전장을 던졌다. 47년간 축산경영인의 길을 걸어온 김홍국회장이 최근 STX팬오션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닭고기사업외에 곡물거래만 1조5000억원어치를 거래해온 김홍국회장은 해운사 인수를 통해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북한과의 전쟁 등 안보위기 기 식량을 확보하는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김홍국회장의 거침없는 도전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진정한 식량안보는 전쟁이 나더라도 식량의 공급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식량 도입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인 소유의 곡물메이저가 생기면 아무리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식량 도입이 중단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실질적인 식량안보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농업회사 하림의 해운회사 경영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은 성공에 도취해서 감당하지도 못할 무리한 확장을 하는 것 아니냐고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하림을 유심히 관찰해온 경제학자로서 나는 이번 일을 낙관적으로 본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림의 해운사 인수, 성공 확신, 인수 매출만 2.5조

첫째 출범 초기부터 충분한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하림이 지불할 STX 팬오션 인수금액은 1조 500억원인데 인수 후 확보할 수 있는 매출액 규모는 STX 팬오션의 기존 매출액 1.5조원에다가 하림 그룹의 곡물 거래량 1조원을 합쳐서 2.5조원이 된다. 이 정도의 매출이면 인수 대금 상환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둘째, 지난 40년간 지독한 시련을 견디며 성장해온 내공을 믿고 싶다. 첫 번째 시련은 1982년 김홍국 회장이 25세 때 닥쳤다.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해서 청년 김홍국은 빚더미에 오른다. 빚쟁이에 쫓겨 돼지우리에 숨기까지 했다. 식품회사 영업사원, 볏짚장사 등 산전수전을 거치며 겨우 재기에 성공한다.

빚더미 몰려 돼지우리 숨기도...영업사원 볏짚장사 산전수전

김홍국은 이 과정에서 삼장통합 경영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삼장통합이란 농장과 공장, 시장을 통합해서 경영한다는 뜻으로 양계에만 머물지 않고 닭고기 가공과 유통까지 수직계열화하는 하림만의 경영방식이다.

두 번째 시련은 1997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닥친다. 금리가 연 25%까지 치솟았다. 은행 대출을 받아 공장 확장을 마친 직후였던 하림은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때 김홍국 회장은 과감하게 월드뱅크 산하의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을 찾아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출을 신청했고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2,0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한다.이 과정을 통해서 하림의 신용과 사업력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세 번째의 위기는 2003년 찾아온다. 공장이 전소되는 대화재를 겪은데다가 조류독감이 겹쳐 닭고기 매출마저 격감하게 된다. 그러나 하림은 이것을 최첨단 시설을 설치하는 기회로 반전시킨다. 보통 기업들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재앙들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역전시켜온 것이 농기업 하림의 성장사이다.

부도 상태의 미국 닭고기 기업인 알렌스패밀리푸즈를 인수해서 짧은 시간에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은 40년 넘게 시련을 겪으며 쌓은 내공을 발휘한 덕분일 것이다. STX 팬오션 인수를 통한 곡물메이저로의 등극에도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공장 전소, 조류독감 경영위기, 첨단시설 투자로 극복

한국인에게 농업은 불쌍한 산업이고 도움을 줘야 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나라 밖을 내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농업은 생명을 다루는 첨단산업이고 수익성도 높은 미래 산업이 되어 있다. 한국의 농업은 패배주의에 빠져 그런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하림만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농업 본연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시켜왔다.

이번에도 잘 될 것이다. 세계적인 곡물메이저로의 등극에도 성공해서 한국 농업의 새로운 장을 열기 바란다. 갈 길 몰라 막막해 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미래로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