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 주인공 땐 찌질했을 것, 오차장 시장봉사 본업 충실 돋보여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최근 직장인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 20(+2)부작(케이블채널 tvN 방송)을 인터넷에서 찾아 한꺼번에 몰아서 봤다. 제목은 비록 미생이냐 완생이냐의 실존적 고민을 담은 것이었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소비자에게 어떤 좋은 것들(goods)을 공급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환들이었다.

실존적 고민은 개인의 몫이지만, 봉사는 관계의 본질이다. 그 관계들을 바탕으로 실존적 애환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기에 미생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윤태호 원작 작가나 김원석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고졸 출신 계약직 장그래보다는 오상식 차장인 것 같다. 장그래가 오상식 차장에게서 자신의 팀에 대한 협동의 마음을 배우고, 횡령 등을 바로 잡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꽌시’ 등에 대해 문제 제기하되 '교각살우'로 인해 회사 동료들이 겪는 곤란에는 또 흔쾌히 책임질 줄도 아는 자세를 익힌 것도 눈길을 끈다.

만약 만화대로 장그래가 중심이었다면, 미생 드라마는 찌질해졌을 것이다. 오상식차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어나가거나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가 상사맨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짤리는' 상황까지 포함해서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희망적이었다. (회사가 시장에 봉사하고, 내부의 부정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포함해서)

   
▲ 드라마 미생은 상사맨들의 본질과 애환을 잘 그렸다. 주인공은 만화속의 고졸 출신 계약직 장그래보다는 오상식차장인 것처럼 비쳐졌다. 오차장이 팀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이다. 사내정치에 몰두하는 것보다 소비자 등에 충실하려는 시장봉사주의 마인드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자세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오상식 차장이 돈 10만원을 주면서 장그래에게 물건을 사서 필요한 사람에게 팔아보라고 실습을 시키는 장면은 상사맨다운 훈련 과정이었다. 오 차장이 꽌시를 중시하는 최전무의 대중국 사업 방식을 경계하면서도, 장그래에게 최전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큰 기여를 해왔는가를 이야기하며, 오해(?)를 품지 말라고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사내 정치(會社內 政治)보다는 시장봉사라는 본업을 통해 드라이하지만 담담하게 상황을 돌파하려는 자세도 오상식 차장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 면이 자신이 한직으로 쫒겨나게 만들었던 악연을 가진 김부련 부장을 신규창업을 했을 때 새 사장으로 모시게 했다. 오상식 차장이 제대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일각에선 만약 KBS 등 지상파가 미생을 방영했다는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지상파는 시청률에 목매 남녀간의 애정과 사랑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tvN은 지상파의 이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남녀간 사랑이란 통속적 프레임을 벗어버리고, 상사맨들의 애환과 시장봉사현장을 생생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계약해지가 된 장그래를 '우유를 발효시키는 기간'이 지난 뒤 새 회사에 끌어가는 모습에서도 오차장의 바탕에 휴머니즘이 깔려 있음을 느끼게 했다.

가장 기억나는 한 마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상식 차장은 말한다.
“우리는 일은 놓쳐도 사람은 놓치지 않는다!”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