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충실한 삶이 행복한 삶이다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44) - 자신에 충실한 삶이 행복한 삶이다.
세네카(BC 4?~65)의 <인생이 왜 짧은가>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매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젊었을 때는 성큼 성큼 자라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에 나아가길 원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위대한 인물이든 평범한 인생이든 이 세상에 나서 길고 짧음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한 세상 살다가는 건 평등하다.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필멸(必滅)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나 한번 쯤 고민하는 주제다. 로마 최고의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세네카 역시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값진 것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세네카는 인생의 길고 짧음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자신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아니면 단축시키는 것도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 수명뿐 아니라 정신적 수명을 모두 함축한다.

행복한 삶을 위한 세네카의 담론 네 가지가 이 책에 담겼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행복한 삶에 관하여’가 그것이다. 소 주제는 다르지만 성찰의 맥락은 하나같이 연결된다.

세네카의 인생관은 세속적 관념의 시간의 길고 짧음을 초월한다.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에겐 긴 시간이 주어지지만, “많이 빼앗긴 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시간 관리적 차원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에 시간을 쏟을 것인가라는 인생관과 관련되는 것이다.

   
▲ 세네카 두상, 대영박물관, 사진 Marie-Lan Nguyen

검소한 생활을 하며 철학에 시간을 내는 사람이라면,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자신에게 침잠하고 자신을 계발하되,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되, “쓸데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이룰 수 없거나 불필요한 일에 지나치게 매달려 분주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보람으로 채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네카가 말하는 이른바 ‘분주한 게으름’이 바로 그것이다. 불필요한 일에 쫓아다니느라 분주하여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계발하는 것에 게을러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하다면, 반대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비워두느냐가 인생의 길고 짧음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인생을 길고 의미 있고 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할당하는 사람일 듯싶다. 하지만 범인(凡人)들에게 이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네카도 위대한 사람들의 시간 관리의 비법을 이렇게 강조한다.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인간적 과오를 초월한 위대한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 일이오. 그리고 그의 인생이 가장 긴 까닭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든 그것을 모두 자신을 위해 비워두기 때문이지요. 주어진 시간 가운데 놀리거나 이용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없으며, 남의 지배를 받는 법도 전혀 없지요.”

현명한 시간 관리를 위해서는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비울 것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채움’이 아닌 ‘비움’의 철학을 깨닫고 이를 실행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무수한 관계와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 삶을 꾸려가는 현대인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인사치레와 눈도장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허비하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가. 남에게 과시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향이 심한 한국인에게 이런 낭비는 더욱 두드러진다. 더구나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삶의 충전으로 삼는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삶에서 ‘비움’의 가치에 주목하긴 어렵다. 물론 시간의 ‘비움’이 단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공백이나 무위도식(無爲徒食)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네카의 ‘비움’의 철학은 허례와 허식에 물들어가며 자아를 상실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보다 충실한 성찰적 삶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성찰을 위한 ‘비움’은 새롭고 의미 있는 ‘채움’의 길을 다시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짧음을 한탄할 일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로 환원된다.

세네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기초는 ‘선(善)’이다. 세네카는 인간이 고통에 처할지라도 선의 미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운과 불행조차 신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를 단련시키기 위한 사랑의 시험이라고 본다. 선한 자가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지만, 길고 더 넓게 보면 결국 선한 자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에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강조한 스토아 철학의 맥락이 읽히는 대목이다.

세네카는 인생의 시련을 딛고 일어설 것을 주문한다. 어떠한 고통과 재난이 닥쳐도 맞서 이겨 나가란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겸허하지만 외부의 탓을 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당당한 철학이다.

“행복한 삶이란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어 동요하는 일이 없는 생활”이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건전한 정신’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세네카는 일시적 쾌락에 흔들리는 삶을 경계한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미덕과 악덕 사이의 불화를 다스릴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요구된다.

자신의 이성과 정신을 신뢰하고 항심(恒心)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선은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힘이며 선견지명(先見之明)이며 숭고함이며 건강이며 자유며 조화이며 아름다움이다.” 세네카는 자신이 정해 놓은 한계를 지키며 마음의 판단력과 됨됨이를 유지할 수 있다면 최고선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선(至善)에 이를 수 있을까. 미덕은 쾌락을 주지만, 쾌락이 항상 미덕을 동반해 주는 것은 아니다. 쾌락을 적절하게 지배할 수 있어야 최고선에 다가갈 수 있다. 세네카는 에피쿠로스(Epikuros, BC 341? ~ BC 270?)가 주장하는 쾌락 추구의 중요성에 대해 동조하지 않는다. 맹목적 욕망으로부터의 절제를 통해 쾌락을 지배할 수 있어야 미덕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쾌락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악덕으로 이끌 만큼의 과도한 쾌락의 추구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세네카는 행복한 삶을 위해 적절한 여가를 즐기고, 선행을 쌓은 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네카의 인생관은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더욱 중시한다.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고, 지나친 쾌락을 탐닉하지 않는 절제된 삶이라면 결코 짧은 인생이 아니다. 빠른 세월이 아쉽고 그동안 무얼 했나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세모(歲暮)다. 자신이 지나치게 분주하거나 어떤 즐거움에 탐닉하고 있을 때, 세네카의 인생론을 한번 쯤 상기하면서 과연 가치 있는 삶인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제 곧 2015년 을미년(乙未年)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어떻게 비우고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허례와 거품을 거두는 일부터 시작하자. 내년 한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될 것이므로.

   
▲ ☞추천도서: 『인생이 왜 짧은가』, 세네카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0, 2쇄). 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