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남침 분노않는 몰역사성 아쉬워…눈물·재미 가족 공감대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1950년 12월 24일,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를 떠나야만 했었던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요즘 뜨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왔다. 장모님은 우리가 그 영화를 함께 보러가자고 하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당신께서 몸소 겪으셨던 흥남철수 이야기, 부산 국제시장 이야기가 나온다고 당신도 꼭 보고 싶어 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울컥 했지만, 의외로 장모님은 담담해하셨다. 영화 막바지, 이제 동생도 찾고 어머님도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찾아오실 것을 포기하자,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재건축에 반대하며 자리를 고수했던 가게 ‘꽃분이네’를 처분하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한 시대를 마감하듯이, 고령에 모든 것을 이미 마음속에서 정리하셨기에 그랬을까? 통일되기 전에는 결코 고향방문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결심하시고, 이산가족상봉을 신청조차 하지 않으셨던, 지금은 돌아가셔서 파주통일동산 황해도 묘역에 묻히신 장인의 마음과 같아서였을까?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에 장모님 이름을 넣으면, 그야말로 “굳세어라 경순아!”이신데...

   
▲ 영화 '국제시장'은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분노가 없다. 이승만대통령이 정전에 반대한다는 육성방송을 들려주기도 한다. 전쟁이 이승만대통령과 관계있는듯이 처리돼 있다. 서독 광부파견, 월남전파병, 수출입국 등을 주도한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것도 없다. 가족과 민초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영화를 보는 가족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김일성왕조의 공산주의보다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다.
 

그 이상의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더 묻지는 않고,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다만 속으로만 그 심지를 헤아렸을 뿐이다. 관람도중 울컥울컥 눈물을 나게 했던 국제시장에 대해 드라이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에서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정전(停戰) 소식을 듣고, “우리는 가만있는데, 강대국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공연히 전쟁을 한다”고 탓하는 왜곡된 지식인의 발언을 통해 6.25 전쟁의 성격을 규정해버렸지만, 실제로 그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전을 반대합니다”라는 이승만대통령의 육성 방송의 삽입에서, 마치 전쟁이 이승만과 관계된 것이고 그것을 끝내는 데도 반대한다는 그릇된 암시를 주는 쪽으로 역으로 흘러갔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그리고 스스로도 무서워서 남한으로 도망치게 만든 김일성 일당에 대한 분노가 어디에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주인공 윤덕수가 서독 광산으로 돈 벌러 가고, 월남으로 돈 벌러 갈 때, 상품 수출 그리고 인력수출이라는 수출입국형 국가정책을 마련한 박정희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 사회 배경 묘사조차도 없다.

빨치산 출신의 이태는 '남부군'이란 책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 삶을 기록”했다고 했지만, 빨치산들은 김일성의 편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쪽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사람들이고,
국제시장의 주인공들은 김일성과 빨치산이 굴린 그 수레바퀴에 깔린 안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렸는데도, 그 숱한 간난과 역경 속에서도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든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저쪽 이쪽 사람들에 대한 감정의 토로가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국제시장' 영화가, 가족에 대한 책임이라는 가치 이외에는, 별 다른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호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분들은 저런 고생을 거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하는 뿌듯함에 감정이입을 시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막바지에 아버지와의 가상 대화 속에서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하는 말을 가지고 특히 그런 해석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대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에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의외인 것은 평소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돋우며 그들의 공이 아니라 민초들의 공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 영화의 민초들의 이야기에 “토(吐) 나온다”(영화평론가 허지웅)고 하는 등 악평을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공을 내세우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시장의 몰역사성, 몰가치성과 이런 반응을 둘 다 생각해보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아마 “엄마가 있는데 어린 남자가 왜 가장이야?”하는 질문이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흥남 철수 때 왜 사람들이 내려왔어?”라는 질문을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거론된 사실들을 계기로 남북을 비교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새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전체적으로 필자는 ‘살부계(殺父契)의 일원’ 같은 사람들 쪽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준데 감사하는 쪽이다. 이 영화가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시켰기에, 그 사건들을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기에, 그리고 그 토론을 통해서 다시금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낫다는 결론을 함께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나서 가족 간에 이런 저런 역사 이야기를 하며, 역사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영화 자체로도 깨알 같은 재미들도 있었고, 모처럼 마음 놓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어서 좋았다.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