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연장근로 허용·시행 유예 등 산업현장 부담 덜어줘야

   
▲ 이동응 경총 전무
12월 29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지난 12월 23일에 있었던 노사정합의에 따라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이번 대책을 기초로 2015년 3월까지 집중 논의하게 된다.

이번 정부 대책의 방향은, 첫째, 근로자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조치와 함께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강화하고, 둘째, 정규직 채용문화 확산을 위해 상시·지속업무에 대한 가급적 직접채용 원칙을 확산해 나가며, 셋째, 임금·근로시간·고용문제 같은 핵심 노동시장제도에 대한 룰을 보완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경제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결단이라고 본다. 실제 12월 22일에 발표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노동시장 개혁방안으로 기간제·파견근로에 대한 사용제한 완화나 규제개선 같은 유연화 방안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살펴보면 매우 우려된다. 비정규직규제 강화에 더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OECD 같은 주요 국제기관이 수차 지적해왔듯이,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원인은 정규직 고용에 대한 과보호와 연공급제에 따른 과도한 임금인상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정규직의 고통분담이 선행되지 않고 비정규직에 대한 추가적인 규제만을 만드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12월 23일 노사정합의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기간제·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기간제·파견근로자가 신청할 경우 2년 범위에서 사용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고, 그 후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임금총액의 10% 정도를 이직수당으로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즉, 근로자가 신청할 경우만 사용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연장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추가비용을 더 부담하게 된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중 상당수가 같은 사업장에 계속 있고 싶어도 정규직 전환 부담 때문에 퇴사한다고 한다. 2년의 사용기간 제한이 자신의 근로권을 침해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례가 존재할 정도다. 즉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사용기간을 폐지하거나, 당사자의 의견이 맞을 경우 추가 갱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이번 대책에서는 근로자에게만 신청권을 부여했으며, 이직수당을 통해 사실상 사용자에게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간제 근로에 대해 사용사유 제한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2015년 상반기에 ‘기간제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게 된다. 이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 상시·지속업무라는 개념은 개별기업마다 제각각일 수 있어 내용 자체가 불명확하다. 흔히 용역근로자를 사용하는 청소업무도 상시·지속업무일 수 있다.

또한 생명·안전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할 예정인데, 이 두 가지 내용이 현실화된다면 사실상 기간제 근로에 사용사유 제한이 도입되게 된다. 주요 선진국을 보더라도 기간제근로자 사용에 있어 기간제한과 사유제한을 모두 채택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독 우리나라만 비정규직에 있어 유례가 없는 강한 규제가 도입되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비정규직 활용을 제한하겠다는 철도기관사, 항공기 조종사, 관제사 같은 직업은 전문교육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는 전문직이다. 이런 직업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업무수행능력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 특히 외국인 항공기 조종사 같은 경우는 국제 노동시장의 관행상 파견 형태로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생명·안전업무라는 이유로 노동시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것은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될 뿐이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2015년 상반기에 ‘특수형태종사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개인사업자인 특수형태종사자에 대한 노동법적인 접근을 담고 있다. 이 경우 노동분쟁화로 인한 현장 혼란만 일으킬 우려가 크다.

한편 이번 대책에 포함된 규제 합리화 방안은 기업의 현실적인 상황 및 수요를 감안하여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파견근로의 경우 기업의 실수요와 관계없는 업무를 중심으로 규제를 푸는 것은 생색내기식 정책에 불과하다. 제조업무 같은 실제 기업이 필요한 업무를 중심으로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추가연장근로 허용, 일정기간 시행 유예 같은 산업현장의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안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12월 23일 노사정은 우리 노동질서가 경제·산업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보고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하는데 합의하였다. 이번 합의는 합리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지 않고서는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서 만들어졌다.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노사정 합의정신에 따라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재검토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규직 대책 없이 비정규직 대책만으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