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 콘텐츠·멀티미디어서비스 전략 없으면 케이블TV 몰락 답습

   
▲ 황근 선문대교수
지난 8월 16일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IPTV가입자가 1,000만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08년 12월 14일 출범한지 채 6년도 되지 않아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록적인 성장이다.

1995년 이후 우리 유료다채널방송시장을 지배해 온 철옹성 케이블TV 아성을 얼마 안가 무너뜨릴 기세다. 일부에서는 케이블TV와 시장점유율이 역전되는 골든 크로쓰(golden cross)가 조만간에 일어날지 모른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통신사업자들이 처음 IPTV라는 인터넷망을 이용한 다채널TV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과연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나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IPTV가 대박이 난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IPTV가 급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외에도 몇 가지 성공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결정적인 원동력은 통신사업자의 막강한 마케팅 영업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흔히 TPS(triple play service) 혹은 QPS(quadruple play service)라고 하는 결합판매의 위력이다.

   
 
인터넷, 인터넷유선전화(VoIP)에 IPTV를 결합하거나 여기에 이동전화까지 포함해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은 IPTV 가입자를 단기간에 급증시킬 수 있었다. 마치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가입하면 케이블TV 수십 개 채널 공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급성장했던 케이블TV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실제 휴대폰 대리점에 가면 ‘휴대폰 가입하면 인터넷 전화 혹은 IPTV 무료’라는 광고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케팅 영업력만으로 IPTV 급성장을 다 설명할 수 없다. IPTV에 가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 케이블TV와 달리 매우 다양한 기능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양방향 디지털 매체로서 고화질 콘텐츠는 물론 수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청자 매체이용 패턴 변화추세에 잘 맞는 플랫폼이라는 평가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영화관과 동시에 제공하는 영화나 VOD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 도입 초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콘텐츠도 크게 보강되고 있다.

이 같은 IPTV 급성장은 반대로 케이블TV 가입자 이탈로 이어졌다. 특히 2011년 출시된 kt의 IPTV와 skylife 결합상품 OTS는 케이블TV 가입자 이탈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SKB나 LGU+도 적극적인 가입자확보경쟁에 나서면서 가입자 이탈을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이렇게 케이블TV가 IPTV성장에 속수무책인 이유는 여전히 저가 아날로그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블TV 디지털 전환은 매우 더딘 상태이고 아직도 700만 이상 아날로그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양방향디지털 IPTV와 경쟁도 되지 않고 VOD, N-screen 같은 고부가 서비스들도 불가능하다. 그냥 가입자 숫자 기반의 홈쇼핑송출수수료에 절대 의존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실제 케이블TV 업계가 kt IPTV를 겨냥한 ‘유료방송합산규제’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도 이 위기를 법제도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IPTV 역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결합판매 같은 저가 혹은 무료 영업 전략으로 성장한 사업구조의 내적 빈곤이다. 실제 IPTV 가입자 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 유료방송의 ARPU는 더욱 낮아졌다.

이는 2000년대 초반 같은 방식으로 성장했던 케이블TV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현상이 IPTV에게도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저가구조에서는 ‘양질의 콘텐츠 생산->가입자 확보->고부가가치 창출-> 콘텐츠 재투자‘라는 선순환 미디어 생태계가 절대 형성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IPTV 역시 고질적인 ‘속빈 강정 같은 미디어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상파방송 재전송 같은 지상파 의존에서 빨리 벗어나 독자적인 콘텐츠 수급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통신사업자들이 보여주었던 콘텐츠 투자 마인드 결여를 감안해 볼 때 위험요소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양방향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고정형 TV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최근 미디어플랫폼은 모바일 디바이스로 급속히 이전해 가고 있다. 때문에 n-screen 같은 적극적이고 선제적 전략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 방송영역 밖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OTT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위협은 아예 방송플랫폼 자체를 우회해 단말기에서 플랫폼기능을 구현하는 스마트TV와 앱TV일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환경변화 속에서 지금 같은 이동통신의 부가상품 같은 형태로는 절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적극적인 콘텐츠 확보와 멀티미디어서비스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