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번역되지 않을 책…정치철학·역사·운동·신학까지 호기심 만발
   
▲ 이원우 기자

[신간서평] 보수주의 여행-황성준 著, 미래한국미디어

저자인 황성준에 대해 조금 안다. 2012년부터 2년간 같은 조직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봤다. 그를 두 어절로 표현하라면 ‘책 중독자’다. 정말로 언제나 뭔가를 읽는다. 두 개의 지하철역 사이의 한 구간을 활용해서 책을 꺼내드는 사람이 바로 황성준이다. 어느 틈에 “요즘엔 뭐 읽으세요?”가 인사말이 됐다. 만나고 나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많이 읽으니 할 말도 많을 수밖에. Book & World라는 기획칼럼은 그가 가장 잘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의 코너였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든 그는 관련된 책 한 권쯤 읽은 일이 있고, 독후감을 빙자해서 하고 싶은 말을 쓰길 좋아했다. 이번에 나온 ‘보수주의 여행’은 2012년 ‘유령과의 역사투쟁’의 후속작이다. 총 46권을 커버하며 전작보다 내용이 깊고 풍부해졌다.

‘보수주의 여행’ 표지엔 선정된 책들의 면면이 일부나마 드러나 있다. 거의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영어권 책들이다. 바로 이 포인트에 ‘보수주의 여행’의 첫 번째 효용가치가 있다.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번역될 일이 없을 책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분야는 정치철학, 국제정세, 역사, 정치, 경제, 운동론과 신학에까지 뻗어있다. 짧은 독후감이 책의 전부를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지적 호기심을 촉발시키기엔 충분하다.

“만약 보수를 현상유지란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대한민국의 역동성과 진보를 이끌어온 한국 보수진영은 분명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 또 다른 문제제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과연 보수(conserve)할 가치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보수주의자는 ‘대한민국파’이다. 한국 보수주의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보수(保守 그리고 補修)하는 이념인 것이다.” (책 서문 中)

   
 

자세히 보면 ‘보수주의 여행’이라는 주제 앞에 ‘어느 Ex-Communist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전직 공산주의자’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상황은 그렇게 한가롭지만은 않았다. 그는 한때 대기업들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암약했고, 공산주의 낙원의 현실을 목도하기 위해 소련으로 갔으며, 낙원 대신 붕괴된 현실을 목도하며 전향한 ‘프로 공산주의자’였다.

어떻게든 세상을 뒤흔들기 위해 애썼지만 정작 가장 많이 흔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뛰어난 두뇌와 오류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가졌으되 ‘출발’만은 좋지 못했던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요즘 그는 가끔 종편 채널에 나와 소위 ‘정치평론’을 한다. 볼 때마다 메시가 배드민턴 치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색한 느낌을 받는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만큼 종편 채널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의 진짜 관심사는 국경 안보다는 바깥쪽으로 뻗어 있다.

언젠가 대한민국이 국제 문제에도 충분한 관심을 갖게 되는 날이 온다면 비로소 그의 진가는 발휘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진 책과 글에 주목하는 게 최선이겠다. 요즘엔 문화일보에서 논설위원으로 활약하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글을 쓰고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행운이다. 2015년 1월, 새해 독서목록 제1호로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