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 한도 600달러, 항공료 10만~45만원…"면세품 취지 상실"
아시아나항공, 평년 기내면세품 판매율 10% 남짓
탑승객 1인당 평균 기내 구매액 7달러 수준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항공사는 경영난에 빠지고 소비자들은 여행을 가지 못해 지쳐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각 항공사들은 적자폭 감소 차원에서 궁여지책으로 무착륙 관광비행편을 편성해 면세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항공사와 소비자 모두 만족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 대한항공 A380-800기 안에서 면세품을 소개하는 승무원./사진=연합뉴스


1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국내 5개 항공사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항공 주무부처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얻어 무착륙 관광비행편 운항에 나섰다.

국내 항공업계 맏형 대한항공 역시 장고를 거듭한 끝에 오는 27일 무착륙 관광비행편을 띄우기로 했다는 전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대한항공의 관리·회계 시스템은 델타항공 관계자들도 혀를 내두른다"며 "좌석 단가가 변동비를 상회할 정도라고 판단해 무착륙 비행 상품 판매에 나선 모양"이라고 평가했다.

◇면세품 쇼핑 목적 탑승객, 항공권 가격·면세 범위 고려해야

   
▲ 면세품을 들고 있는 제주항공 객실 승무원./사진=제주항공 제공
각 항공사들은 무착륙 관광비행을 일본 등 인접 국가 영공을 잠깐 들렀다 오는 국제선 중심으로 기획하고 있다. 기내 면세품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착륙 관광비행 면세 쇼핑이 과연 소비자와 항공사 모두에게 이득일지는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LCC들이 제시하는 무착륙 비행편 티켓 값은 에어부산 기준 최저 9만9000원. 티웨이항공은 15만9000원, 에어서울은 19만7000원에 비행 상품을 내놨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코노미석 25만원, 비즈니스 스마티움석 35만원, 비즈니스 스위트석 45만원 등 다소 높은 가격대에 티켓을 팔고 있다. 같은 풀 서비스 캐리어(FSC)인 대한항공도 비슷한 수준의 가격을 책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이와 같은 비행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면세품 구입을 주 목적으로 탑승한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일부 기내 면세품에 대해 최대 70~80% 할인율을 적용한다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하지만 일부 상품에 그친다.

면세품은 말 그대로 세금 부과가 면제된 상품을 의미한다. 하지만 면세품 구입을 목적으로 지불하는 항공료가 옵션에 따라서는 상당히 높아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 물건가에 포함된 세금을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그보다 더 내게 될 수도 있어 사전에 면밀한 셈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면세액 한도가 600달러(한화 약 66만원)로 고정돼 있다보니 실제 소비자들이 얻게 될 이득은 사실상 없을 수도 있다. 가령 45만원이 책정된 아시아나항공 비즈니스 스위트석을 고를 경우 사실상 21만원(190달러) 한도 내에서 구입해야 면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이모 씨는 "시간 아까운 건 둘째 치고 면세 쇼핑의 취지가 퇴색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의외로 낮은 기내 면세점 객단가…항공사들도 재미 못 봐

소비자들의 이득이 크지 않지만 항공사들도 큰 반사이익을 보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 국내 항공사 로고./사진=각 사

대한항공의 2014년 기내 면세점 연매출은 2074억700만원. 하지만 매년 감소해 2015년 1952억2700만원, 2016년 1891억2900만원, 2017년 1692억3500만원 2018년 1540억300만원, 2019년 1575억720만원으로 연평균 5.1%씩 하락세를 보였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면세점 연매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4년 1225억4400만원, 2015년 1161억900만원, 2016년 1108억1800만원, 2017년 964억2600만원, 2018년 902억880만원으로 연평균 7.29%씩 매상이 떨어졌다.

이와 같은 추세는 시내와 인터넷 면세점이 급성장한 것에 기인한다. 아울러 좁은 기내에서 여러 업무로 바쁜 객실 승무원을 동원해 전문적인 마케팅에 나서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이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기내면세품 판매율은 2018년 10%, 2019년 11%, 2020년 9%"라고 답변했다. 이는 기내에 실은 면세품 개수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 아시아나항공이 면세품 구매 가능한 'A380 당일치기 해외여행' 운항을 지난달 31일 재개했다./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아시아나항공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탑승객 1인당 평균 기내 면세품 구매액은 7달러(한화 약 7700원), 성수기에는 8달러(한화 약 8800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평균 구매액인만큼 기내 면세품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계산된 수치여서 실제 구매자들로 한정하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토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 자료에 근거하면 지난해 12월 12일 아시아나항공 A380-800 무착륙 국제선 관광비행편 탑승객은 169명. 1인당 평균 기내 구매액 7달러를 곱하면 해당 비행편에서는 대략 1183달러(한화 약 130만5000원)어치의 면세품을 팔았을 것이라는 단순 계산값을 도출해낼 수 있다. 성수기 기준으로 봐도 1352달러(한화 약 149만2000원). 이 수준으로는 연료비나 인건비 조차 건지기 힘들다.

◇무착륙 비행 상품 판매하는 항공사들의 '정신승리'

무착륙 관광비행편을 운영하는 일부 항공사들은 탑승률이 90%를 넘었다며 보도자료를 내고 자축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홍보를 위한 꼼수 내지는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실제 판매하는 좌석 수는 코로나19로 인해 더 적으므로 전체 좌석 대비 탑승률은 훨씬 낮아질 수 밖에 없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새해 첫달인 지난달 진에어는 5회, 에어부산 3회, 제주항공 3회, 티웨이항공 3회 무착륙 관광비행편을 운항했다. 하지만 이 항공사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공급좌석을 ⅓ 가량 축소했다.

171석을 공급하던 진에어는 114석으로, 에어부산은 202석에서 134석으로, 제주항공은 171석에서 114석으로 자리를 줄였다. 이들은 다소 제한된 공급좌석 기준으로 각각 79.65%(91석), 88.12%(118석), 55.56%(63석)의 탑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 사례와 단순 비교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나 3사 역시 큰 이익을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들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무착륙 관광비행을 통해서는 난국 타개가 어려울 것 같다"며 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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