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번영의 도시'서 '러스트 벨트' 전락 위기…동북아 항공·물류 허브 기대
요즘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이 최대 이슈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치러지는 4.7보궐선거에 나오는 여야 예비후보들이 예외 없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건설 비용이 얼마나 들지 정확한 추정도 없다. 10조원 정도로 예상했지만 오래 전의 추정치라 두배가 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당 모두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철통 같이 약속했다. 

여야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의결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실행 가능성을 높였다. 부산시민들은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시민의 자존심'이라며 환호했다. '신공항 반대 정당은 후보도 내지 말라'는 게 부산의 민심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부산시장 후보 단 한 명만이 "가덕도 신공항은 경제성이 없으며 건설을 강행하면 천문학적인 비용 투입으로오히려 부산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작고, 듣는 사람도 없다.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9일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가덕도신공항 유치를 위한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부산이 이렇게 가덕도 신공항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부산이 사회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은 산과 바다, 강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둘도 없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지만 산업전환에 실패해 일자리는 없고 청년들은 떠나는 도시가 됐다. 

세계 5위 무역항 자리는 중국 항만에 내 준 지 오래고 부산의 기간산업이었던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얼마간은 버티겠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부산은 울산, 경남 지역과 함께 이른바 대한민국의 '러스트 벨트'가 되고 말 것이다.

부산은 1876년 개항 이래 6.25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태평양의 관문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과 경제 호황을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 '자유와 번영'의 도시였다. 6.25전쟁 직전인 1949년 부산 인구는 47만명에 불과했으나 피란민들이 몰리면서 1955년에는 인구가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1995년에는 388만명으로 4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인구유입이 늘면서 인구구성도 다양화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렸다.

잘나가던 부산은 1995년을 정점으로 내리막 길을 걷었다. 2021년 인구는 338만명으로 쭈그러들었다. 26년만에 50만명이나 빠져나갔다. 작년 기준 합계 출산률은 0,83(전국 평균 0.92)으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작년 4분기 부산의 고용률은 56%로 전국 꼴찌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741만원으로 전국 평균 3721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꼴찌에서 2등이다. 해운대 바닷가에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겉만 화려할 뿐 부산은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 낳고 노인들만 넘치는 도시가 됐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 스스로 '노인과 바다'란 말로 부산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부산의 퇴보는 수도권 집중과도 긴밀히 연계돼 있다. 수도권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대한민국 인구는 5182만명인데 서울 966만명, 인천 294만명, 경기 1345만명 등 수도권에만 2605만명이 몰려 있다. 국토면적의 11.8%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산다. 자연스럽게 기업, 일자리, 문화, 스포츠, 오락, 자금 등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다. 결과는 지방의 경쟁력 추락이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시장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사진=국민의힘 제공

부산시민들이 가덕도 신공항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부산 경제 회생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소 10조원이 넘는 거대한 토목, 건설 공사가 수년간 지속되면 그것 만으로도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공항 완공 후 제대로 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항공 허브가 될지 여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만큼 오늘 처한 현실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토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 수도권 집중 억제책을 썼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한다. 서울의 인구는 소폭 감소했지만 경기도의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두고 '서울의 확장'이라고 한다. 수도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메가 시티가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을 살릴 것인가. 해법은 지방도 수도권 못지 않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적어도 한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사는 것과 지역에서 사는 것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자리가 있다든지, 생활비가 싸다든지, 교육여건이 좋다든지 지방이 좋은 이유가 몇 개는 있어야 한다. 수도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지방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덕도 신공항도 마찬가지다. 총력을 다해 최고의 공항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김해 공항을 확장, 이전한 수준이라면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 낳은 최악의 돈낭비로 기록될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부산 경제 회생의 희망이 되려면 대구, 경북과 부산, 울산 경남은 물론 광주, 전남까지 연계해 명실상부한 한반도 남부의 항공물류 허브가 되는 것뿐이다. 

일본 규슈 지역과 중국 동남부 수요까지 흡수해 동북아 최고의 항공 여객·물류 허브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정밀한 계획과 긴밀한 협력, 과감한 집행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거면 아예 첫 삽을 뜨지 않는 게 낫다. /송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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