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 놓은 후안무치한 신년사

취임식 때와 마찬가지로 조대현 사장이 또 다시 조대현 교수로 변신해 새해 시무식날 40분에 걸쳐 일장 강연을 하였다. 형식이야 어떻든 사장이 자신의 한해 경영 방침과 계획을 설명하고 직원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쏟아낸 어처구니없는 궤변과 황당한 상황 인식은 희망을 품고 시작해야 할 새해 첫 마음가짐을 절망으로 뒤바꿔 놓고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첫째, ‘고통분담’을 이야기하였다. 지난해 학자금 혜택 축소와 쥐꼬리 임금 인상을 감수하면서 한해를 시작한 우리 KBS 가족들은 상반기 월드컵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해 발생한 수백억 원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조대현 사장 취임 이후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강요받았다. 연말 흑자 전환은 오롯이 KBS가족들의 피와 땀을 짜낸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고생했다고 임금을 올려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월급을 깎자고 주장해 임금협상을 결렬시키더니 새해 벽두부터 또 다시 고통분담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사장은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내야 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다.

반식재상(伴食宰相)

둘째, 해를 넘겨서까지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KBS 창사 이래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비정상적 상황이다. 90년대 말 IMF 때도, 2000년대 중반 세계 금융위기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심지어 쫓겨난 전 사장도 이러지는 않았다. 지금 사장은 적어도 임금과 관련해서는 역대 최악의 사장인 셈이다. 이쯤 되면 ‘사장 물러가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경영진은 민심을 알고나 있는가. 반식재상(伴食宰相)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셋째, 사장과 경영진은 두세 달 전에는 수백억 적자, 그리고 불과 한 달 전까지도 백억 이상 적자 운운하더니 이제는 수십억 흑자를 얘기하고 있다. KBS가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손익 전망이 이렇게 들쭉날쭉하면 이건 누가 봐도 사장과 경영진이 수지 전망을 놓고 장난치거나 거짓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수십억 흑자 얘기도 믿을 수 없다는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흑자폭을 줄이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상한 예산 집행 사례도 있었다. 사장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면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런 신뢰의 위기는 사장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

넷째, ‘무임승차자 퇴출’을 이야기하였다. 노동조합도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까지 보호할 의사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KBS 안에서 과연 누가 무임승차자인가. 대다수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 메고 인력난에 허덕이며 과로에 시달릴 동안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만 지키다가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을 생각만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직원들이 고생할 동안 수신료를 올리기를 했나, 광고를 많이 유치하기를 했나, 아니면 판로를 잘 개척해서 콘텐츠 수입이라도 올리기를 했나.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예산 삭감 이외에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은 어떤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 그럼 무능한 것이다. 무능한 사장이 ‘무임승차자 퇴출’을 얘기하면 그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

다섯째, 사장은 ‘임금피크제와 직급체계 개편’을 언급하면서 ‘노조와 협의 중인데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까지 교섭대표노조인 KBS노조와 사측 사이에 이 두 안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진전된’ 협의도 없었다. 그런데 노조와 협의 중이라면 사측은 KBS노조 이외의 다른 소수노조들과 물밑 협상을 했다는 것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도 궁금하니 협상 내용을 공개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이 두 안건을 관철시켜서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싶다는 사장의 강력한 의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해서야 되겠는가. 명백한 곡학아세(曲學阿世)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여섯째,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말하였다. KBS노조가 몇 년째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해 온 안건이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한다. 하지만 몇 달 전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사장은 식비 현실화 등 계약직 동지들의 기본적인 처우 개선 요구조차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최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고 이른바 노동개혁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천명하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뜬금없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무엇이 진짜 조 사장의 본색인가.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경거망동(輕擧妄動)

일곱째, ‘프로그램 대개편’을 언급하면서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도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피드백을 받는 지는 모르겠으나 사장이 개편 하루 만에 자화자찬하듯 평가를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경솔한 처사다. 그러다 내.외부 할 것없이 이구동성으로 대개편을 대실패로 평가하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더구나 사장의 언급과는 달리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오히려 비관 일색인데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경거망동(輕擧妄動)이다.

충무공은 명량에서 부하들이 머뭇거리자 스스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되돌아보라. ‘조대현’이라는 리더가 지금 KBS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솔선수범은 과연 무엇인가. 아니 그 정도는 기대도 하지 말자. 제발 후안무치, 반식재상, 적반하장, 자업자득, 곡학아세, 표리부동, 경거망동 이런 말은 듣지 않게 해 보라. 사장에 대한 조합의 인내심이 서서히 바닥나고 있다.

2015년 1월 5일
교섭대표노조 KBS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