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부르짖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세계 언론에 하소연
   
▲ 이원우 기자

옛날 옛적 대한민국엔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이 있었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결정이 내려진 당이다.

이들을 수식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주체성(主體性)이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우리 민족끼리’ ‘주체적으로’ 해내겠다는 결기. 그것이야말로 통진당의 기본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5일엔 많이 당황했던 모양이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 간담회를 연 통진당은 자존심인 주체성을 잠시 유보한 듯 푸른 눈의 외신들을 향해 황급히 외쳤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였습니다.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있던 통합진보당이 눈엣가시였고, 그래서 일련의 (해산) 작업이….” (이상규 前 의원)

김재연이라는 이름의 前 의원은 카터센터가 이석기 전 의원의 구명 성명서를 낸 걸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카터 대통령이 설립한 카터 센터에서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국가보안법을 통해서….”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주체성 빼놓으면 세상 못살 것처럼 외쳐대던 사람들이 급할 땐 외신을 찾고 있는 이 풍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수막에 적혀 있는 '제국의 언어'가 새삼 생경하다.

   
▲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김미희(왼쪽부터), 이상규, 오병윤, 김재연 전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우 이병헌 주연으로 관객 1000만을 돌파한 영화 ‘광해’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통진당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정치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것입니다.”

통진당이 여전히 대한민국 땅에서 정치라는 걸 하고 싶은 거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떼쓰기로는 어림도 없다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 세계에게 도움을 청하며 뭔가 ‘받고’ 싶은 게 있다면 통진당은 세계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보시길.

앞으로는 미국산 쇠고기를 애용하겠다거나, 한미FTA에 찬성하겠다거나, 자유무역에 동의하겠다는 정도의 입장 변화는 보여줘야 그들의 목소리에도 진정성이 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심산이 아니라면 원래 하던 대로 북한의 입장을 ‘주체적으로’ 답습하는 게 일관성이나마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방편일 거라고 본다. 인간의 본 모습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이제 와 약해지지 마시길. ‘통진당, 힘내세요! 북한이 있잖아요!’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