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MBC <킬미 힐미>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지성도, 황정음도 아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던, “내일 봅시다” 단 한마디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던 ‘강대리’ 오민석이었다.

그는 얼마 전 종영한 tvN <미생>에서 ‘강대리’로 출연해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하늘이 도와야, 그리고 ‘자고 일어나보니’ 된다는 스타가 되기까지 꼭 5초가 걸렸다. 장백기에게 건넨 “내일 봅시다”라는 대사는 그를 내일 보고 또 내일 보고싶은 배우로 급성장시켰다.

단 5초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으나, 그 시간을 기다리기까지는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데뷔 후 아침드라마 주연을 꿰차며 떠오르는 듯 하다 슬럼프가 닥치고, 주연과 조연을 오갔지만 그는 쉽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주연과 조연 사이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배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도 했다.

   
▲ 배우 오민석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신사옥에서 열린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뉴시스

그런 그에게 <미생>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을지 모른다. 드라마에서 가장 딱딱한 선임이라 굳셀 강(强)을 썼는지 극중 이름까지 ‘강대리’인 탓에 처음에는 다른 캐릭터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신입사원에게 아주 조금 곁을 내줬을 때 던진 “내일 봅시다” 한 마디에 장백기는 웃었고, 시청자들은 뭉클했다. 그리고 오민석은 극중 박대리처럼 날개를 달았다.

그는 매체 인터뷰에서 “(대본에)나와 있는 그래도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가 괜히 이렇게 쓰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확고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내 캐릭터 분석을 앞세우고, 조금만 틈이 있어도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애드리브를 넣으려는 배우들이 가득한 세계에서 우직한 믿음은 그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중견 연극배우들은 자주 ‘무대에서는 내가 나를 속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속을 정도로 캐릭터에 빠져들어야 관객도 속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역시 “저런 사람은 없다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은 리얼리티의 차이가 있다”며 “어떤 사람을 연기하려는 것과 그 자체를 믿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내일 봅시다’ 라는 대사가 그리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울림을 남겼는지 모른다.

오민석 개인의 배우 인생에도 <미생>이 미친 영향은 크다. 그는 “별순검 출연당시 성지루가 대사전달에 조언해줬는데 잘 고쳐지지 않았다. 펑펑 운적도 있다”며 “얼마 전 성지루가 전화해 딱 한마디를 했다. ‘들린다’라고. <미생>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대사가 들린다’라는 말은 주로 무대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후배들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쓰는 말이다. 그가 연기에 제대로 눈을 떴다고 선배가 인정한 셈이다.

   
▲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신사옥에서 열린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진만 연출, 배우 오민석, 황정음, 지성, 박서준, 김유리(왼쪽부터) / 사진=뉴시스

<미생> 종영 후 오민석은 수많은 대리들 중 처음으로 차기작에 얼굴을 비친다. 대리에서 사장으로, 급성장한 인지도만큼 직위도 껑충 뛰었다. 단 딱딱한 대리에서 딱딱한 사장으로 직위만 변신할지, 자신만의 캐릭터를 다시 만들어낼지는 그의 능력에 달렸다.

비로소 연기에 눈을 뜨고, 인기까지 얻은 그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바는 크다. 이 부담을 안고 주연으로 뛰어오르는 배우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사라져버리고 마는 배우도 부지기수다. 강대리의 캐릭터를 사랑하던 시청자들이 차기준 사장도, 한발 더 나아가 배우 오민석도 사랑할 수 있는 흐름이 이어질 수 있을까. 그 새로운 발걸음은 “내일(7일) 봅시다” [미디어펜=최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