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대한항공 오너일가가 이번에는 한진칼에 대한항공 유상증자 부담을 떠넘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보유중인 지분을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으로 교환한 뒤여서 대한항공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하면서도 유증으로 인한 신주배정자금 부담에서는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은 6일 장 마감 뒤 운영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방식의 5000억원 규모 유증을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발행되는 신주는 보통주 1416만주로, 기존 주식(5868만주) 대비 24.1%다. 기존 주주들이 80%의 신주를 받아가고 나머지 20%는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한다.

대한항공의 유증 결정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부채비율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와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말 기준 696%였던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3분기 말 809%로 올랐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000%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는 20조7521억원에 달한데 비해 자본은 2조5647억원에 불과했다. 이번 유증으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100~200%, 이자비용이 약 100억원 정도 낮아질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사실 이번 유증은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다. 대한항공은 2013년 말 구조조정을 통해 3조 5000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하고 올해 말까지 부채비율을 400%대로 낮추겠다는 자구안을 발표했다. 당시 자구안에는 유증이 포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무구조 개선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서 부채비율이 급증하자 서둘러 유증이라는 카드를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 조양호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왼쪽)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사진=뉴시스

문제는 유증 시기에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조원태 부사장, 조현민 전무 등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의 지분 10%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인적분할했고 지난해 10월15일부터 11월5일까지 한진칼은 조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 지분을 공개매수하고 대신 자사 신주를 교부했다.

현재 대한항공의 최대주주는 지분의 32.24%를 보유한 한진칼로, 이외 한진이 9.69%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의 지분율은 0.04%에 불과하고 조현아 전 부사장 삼남매의 지분은 아예 없다. 반면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최대주주(15.49%)로 올라섰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삼남매도 7.43%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을 비롯한 특별관계인의 한진칼 보유 지분율은 31.44%에 달한다. 즉 대한항공과 지수사 한진칼의 지분을 맞바꾸면서 조 회장 외 오너일가→한진칼→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더 강화된 것이다.

지배력은 강화됐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책임은 더욱 약해졌다. 이번 유증은 주주배정 증자방식이어서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과 한진, 일반주주 등이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특히 52.96%에 달하는 일반 주주는 오너일가의 일방적인 유증 결정에 2118억원을 내야하는 상황이 됐다.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의 하락도 불가피하다. 대한항공 주가는 7일 장에서 5%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일찌감치 지주사인 한진칼로 옮겨간 오너일가는 주가희석 우려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수백원억대의 신주배정자금도 부담하지 않게 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유증 결정은 대한항공 오너일가가 비판받아 마땅한 조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 7일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조 전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