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 함몰된 정부 정책·미디어계 갈등에 '느림보 갈지 자' 행보

   
▲ 황근 선문대 교수
지난 년말부터 2014년 주요 미디어 이슈들을 9차례에 걸쳐 정리해 보았다. 몇 년간 해오면서 항상 느끼곤 했지만 올해는 정말 혼란스럽고 안타깝기조차 했다. 한마디로 미디어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여전히 ‘느림보 갈지 자 행보’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가혹하게 표현하면 ‘마지못해 시늉만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사업자들의 행보는 미디어 정책을 더욱 혼돈으로 밀어 넣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정책은 실종되고 사업자간 이해갈등과 종잡을 수 없는 추상적 목표와 슬로건들 로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2014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또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올 수도 있다. 때문에 2014년도 미디어 쟁점들을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도출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동안 지적되어 왔던 재원 고갈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방송 재원은 광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KBS수신료, 유료방송 시청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방송수익은 아니지만 홈쇼핑 송출수수료도 적지 않다. 문제는 ‘마르지 않는 샘’ 같았던 방송광고가 인터넷과 모바일의 급성장으로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KBS수신료는 30년 넘게 월2,500원에 머물러있고, 유료방송 월 시청료는 유료방송사업자간 가입자 경쟁으로 도리어 더 낮아져버렸다.

때문에 모든 사업자들이 ‘먹거리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느낌이다. IPTV의 VOD 서비스나 지상파방송사들의 콘텐츠 판매수익 등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허용’이나 ‘KBS 수신료 인상’ ‘지상파방송 재송신 댓가’ 같은 쟁점들은 사업자간 먹거리 싸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들에 대처하는 주무부처의 대응은 거의 낙제점 수준으로 보인다. 정책적 균형감을 상실하고 사업자간 갈등만 더 부추겨 ‘먹거리 빼앗기’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저가 고착된 유료방송시장 정상화를 통한 재원강화 정책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고 도리어 더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공영홈쇼핑 채널’을 추가로 도입하는 모순된 정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 방송시장이 재원 고갈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방송시장 내부가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같은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사업자의 광고를 늘려주는데 집착하기보다 공영방송 재원이나 유료방송시장 정상화 등을 통한 재원 다각화 같은 균형있고 거시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 2014년 미디어계는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허용, KBS 수신료 인상, 지상파방송 재송신 댓가 같은 사업자간 먹거리 싸움의 한 해였다.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실종되고 사업자간 이해갈등과 종잡을 수 없는 추상적 목표와 슬로건들 로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뉴시스
둘째,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지만 많은 방송정책들이 정치쟁점화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정치적 역학과 무관하지 않은 KBS 거버넌스나 수신료 문제는 물론이고 많은 사업자간 이해 갈등들도 국회라는 정치권에서 판이 벌어진 것이다. 여전히 정치적 갈등 속에 머물러 있는 종합편성채널과 사업자간 이해갈등 성격이 강한 통합방송법과 유료방송합산규제도 정치쟁점화 되어 버린 상태다.

당초 정치적 쟁점이 아니었던 700Mhz 주파수 문제는 사업자들이 정쟁화시킨 경우다. 문제는 정쟁화 되면 갈등이 해소되기 보다 더 증폭된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에 있었던 많은 쟁점들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갈등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정부의 체계적인 조감도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2014년에 있었던 많은 쟁점들과 정부 대응방안을 보면 도저히 큰 줄기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정작 시급한 정책이슈들이 도외시되는 ‘무의사정책(undo policy)’과 그때그때 대응하는 임기응변식 정책이 만연될 수밖에 없다. 실제 당초 계획을 갑자기 앞당긴 UHDTV 채널 개국이나 콩볶아 먹듯 연말에 추진한 공영 홈쇼핑 도입은 다분히 과시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체계적 정책의 부재는 방송 주무 부처가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두 부처가 서로 협력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기 부처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KBS 수신료 인상, 지상파다채널 방송 허용과 미래창조과학부의 공영 홈쇼핑 등이 그 예다. 그렇지만 두 부처의 규제영역에 있는 사업자 간에 이해가 충돌한 700MHz 주파수 분배 정책은 그 같은 부처간 갈등 상태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보니 논의 자체가 국회로 넘어가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넷째, 모든 방송정책에 ‘창조’라는 접두사가 붙으면서 정책자체가 외부화 혹은 도구화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KBS 수신료 인상과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허용은 ‘한류 창조콘텐츠 활성화’, UHDTV 도입은 ‘미래창조콘텐츠 동력’ , 공영홈쇼핑도입은 ‘창조혁신기업 유통활성화’ 같은 슬로건으로 포장되면서 방송정책의 본질을 벗어나 버렸다.

이 정책들이 다른 사업자나 방송시장 전체에 미칠 문제점이나 갈등은 애써 무시하고 ‘창조’라는 목적에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 정책들이 방송시장을 크게 왜곡시킬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더구나 매우 추상적이고 개념자체도 불투명한 ‘창조’라는 목표의 ‘아전인수식 차용’도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정치성이 탈색된 ‘창조’개념으로 본질적으로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문제나 종합편성채널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거나 아예 제외된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갈등요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어 있다가 더욱 큰 폭발성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2014년 미디어 쟁점들을 살펴보면, 이제 미디어 이슈들은 미디어 내부가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같은 외부 매체들과의 문제로 진화한 것을 잘 볼 수 있다. 수용자 밀착형 디지털 기능들로 장착된 IPTV의 이례적 급성장이나 인터넷 기반의 OTT 확산속도 등을 보면, 과연 언제까지 ‘방송’이라는 용어가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미디어 갈등과 정부 대응들은 디지털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는 정말 아날로그적(?)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2014년 미디어 판은 혼돈과 미몽에서 헤매다 지나간 듯하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