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선언 계승” 외면 미측, ‘북한 비핵화’ ‘인권’ ‘중국’ 강조
미중 2+2회의서 중국의 대북제재 준수 압박하며 북핵 해결 의지
한미일 협력 진전 없고 중국 견제 심화 때 양자택일 도래할 수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5년만인 지난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2+2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수주 내 대북정책이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정책을 만들면서 한국은 물론 일본과 조율하겠다고 말해 우리정부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 주목된다. 이번에 미국측이 강조한 ‘북한 비핵화’, ‘북한인권 개선’, ‘중국 견제’는 한미 2+2 공동성명에서만 모두 빠졌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이번 한국 방문은 취임 후 첫 해외순방으로 일본을 시작해 한국을 거쳐 중국의 카운터파트까지 만나는 16~19일 3박4일의 숨가쁜 일정으로 소화됐다. 조 바이든 정부의 첫 외교 일정이라는 점에서 현재 미국은 중국 및 북한 문제를 외교의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정부로선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지만 또 그 만큼 한미일 3자 협력이란 쉽지 않은 숙제를 안게 됐다.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와 ‘중국’이란 표현이 들어간 미일 공동성명과 두 표현 모두 빠진 한미 공동성명에서 나타났듯이 우리정부는 대중 및 대북 정책에서 미국과 다른 시각차를 견지했고, 이는 향후 부담이 될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은 한미 2+2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 수립 과정에서 한국‧일본과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다면서 “이미 공동의 우려 상황이 있고,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 일본이 ‘한국 때리기’에 나설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우리정부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 문제에서 우리정부가 바라는 것은 조속한 북미협상 재개다. 이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1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물인 ‘싱가포르 선언’ 계승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유산인 싱가포르 선언 계승과 관련해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이에 대해 언급을 피했으며, 대신 우리정부가 언급을 삼가고 있는 북한인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이번에 미국의 두 장관을 청와대에서 접견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트럼프 정부 때 문 대통령이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했던 것처럼 북한 문제가 북미 간 양자협상이나 남북미 간 3자협상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대북제재 준수 등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모든 경제적 관계를 중국을 통해서 이루는 독특한 관계를 가졌다.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이 영향력을 발휘해서 북한을 비핵화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압박 옵션과 향후 외교적 옵션 가능성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 (왼쪽부터)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의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 홍소영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이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우선적인 원칙은 기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된 대북제재에 중국을 포함한 모든 참여국들이 완벽하게 동참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재 준수라는 원칙으로 중국을 압박해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풀겠다는 의도라면 당분간 미국의 외교력은 중국을 향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미국의 대중 안보연합체인 일본‧호주‧인도와 함께하는 ‘쿼드’가 예상보다 빠르게 실질적으로 구축되고, 여기에 한국까지 동참하는 ‘쿼드 플러스’ 요청도 본격화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정부가 견지해온 쿼드 플러스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버리고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원칙은 벌써부터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최근 북한인 문철영(56)을 ‘불법 자금세탁’ 혐의로 미국에 인도했고, 북한이 이에 대해 19일 외무성 성명을 내고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북한은 당장 말레이시아와 외교 단절을 선언했고, 미국에 대해서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블링컨-오스틴 장관의 방한에 맞춰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와 최선희 외무성 1부상의 담화를 연달아 내고, 미국의 지난 2월 중순 북한 접촉 시도를 공개하고,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라”며 기싸움을 시작했다. 남한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에 경고한 것이다.

미국은 또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만난 중국측에 북한 문제를 과제로 제시했다. 미국측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중국이 소극적으로 이행한다”고 지적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 미중 고위급회담은 격렬한 대립 끝에 공동발표문도 없이 마무리됐지만 양측 모두 “솔직한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앞으로 서훈 안보실장의 방미 등을 계기로 바이든 정부와 북한 문제를 계속 긴밀하게 협의해나간다는 입장이다. 특히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마주앉는 한미 정상회담을 모멘텀으로 삼을 전망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정부와 협의없는 정책이 나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민석 대변인은 20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미국의 두 장관 면담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미측은 북한과 관련한 우리측의 전문성을 평가하면서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우리측 의견을 적극 참고하고 계속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했다”며 “북한 문제는 한국과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바이든 외교안보 수장의 짧은 방한 이후 대북정책과 관련한 협의는 고위급은 물론 실무라인에서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대북 실무라인이 아직 진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당장 진전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 31개국과 외교관계를 총괄하는 동아태 차관보는 성김 대행이 맡고 있으며, 특히 북핵 협상을 전담할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임명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