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류슬기 기자] 모든 담배의 가격이 오른 15일은 흡연자에게 최악의 날이었다. 일제히 2000원가량 껑충 뛴 담뱃값에 경악하며 그동안은 아직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담배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그마저도 오늘부터는 할 수 없게 됐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서울역, 역사 입구를 뿌옇게 막아서던 담배연기는 보름 사이 눈에띄게 줄어들었다. 사람들로 빽빽하던 흡연실은 한산하기까지 했다. 담배를 사기 위해 역사 안 편의점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편의점 계산대의 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흡연실 부근에서 담배를 구걸하던 노숙자는 10여 분 동안 세 가치의 담배만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담뱃값 인상 이후 흡연실 이용자가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며 “이전보다 담배 얻기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한끼 밥값으로 사서 피우기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 전국의 모든 음식점, 카페 등이 1월 1일부터 금역구역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흡연석 사용 금지에 대한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 사진=뉴시스

흡연실에서 만난 대학생 김경오(24)씨는 흡연구역 지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격 인상 이후 하루에 피우는 담배를 5가치로 줄였다”며 “건물은 물론 학교 내에서도 흡연구역을 찾기 어려워졌다. 담배를 숨어 피워야 하는게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인상폭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석여진(24)씨는 “500원 정도 인상했다면 적절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했고, 정승우(25)씨는 “2000원까지 인상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담배를 끊고 싶다”며 “불만을 이야기하라면 욕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발길을 시청 부근으로 옮기자 삼삼오오 흡연하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좁은 흡연구역이 사람으로 빽빽하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김상록(33)씨는 “미리 사놓은 담배가 5보루 정도 있다. 이것만 피우고는 끊을 생각”이라며 “주변에서는 금연이다 줄인다 하지만 한 두 달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은 1월 1일부터 실내 흡연이 금지된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종로의 2층 규모 카페 점원은 “흡연석을 없애고 서서 흡연할 수 있는 탁자만 설치하고 음료는 반입할 수 없게 조치했다”며 “편하게 앉아 흡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심시간 영업에 타격이 없을 수는 없다. 명확한 시설기준을 세우고 흡연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월 1일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편의점에 붙어있는 인상안 공지문. / 사진=뉴시스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탑골공원 주변은 ‘안개가 걷혔다’고 표현할 만큼 흡연자가 확 줄어들었다. 보름 전만 해도 담배연기로 자욱했던 탑골공원 동편 골목은 말끔하게 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삼삼오오 흡연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이 있었으나 예전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낙원상가 부근에서 만난 이정수(72)씨는 “담배 사 피우느니 300원 보태 이발소에서 염색하지”라며 “3000원짜리 국밥 먹으며 4700원짜리 담배 태울 여력이 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50년 친구였던 담배를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됐다”고 껄껄 웃었다. 옆에 있던 노인은 기자에게 “지금 제일 싼 담배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담뱃값 인상의 최대 수혜자이자 직격탄을 맞은 편의점을 몇 곳을 찾았다. 15일부터 가격이 올라 그동안 품귀 현상을 빚었던 던힐과 뫼비우스 제품이 진열됐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의점 진열대는 텅 비어있었다. 한 편의점 직원은 “어제 들어왔어야 할 담배가 오지 않았다. 최근 주문량에 비해 입고량이 현저하게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던힐과 뫼비우스를 1~2보루씩 받았다는 한 슈퍼 주인은 “평소 해당 담배를 애용하던 손님들이 반색하며 2~3갑씩 사간다”며 “다른 제품보다 200원 저렴한 만큼 일부 손님은 던힐, 뫼비우스, 혹은 더 저렴한 보그로 피우던 담배를 바꿔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평소 흡연구역은 한숨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불을 붙여 흰 연기로 내뿜는다. 그래서 담배는 유독 서민들에게 사랑받는다. 흡연구역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내뿜어야 하나. “불만을 얘기하라면 욕부터 나온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