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개봉 30일 만인 지난 15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오늘의 연애’에 넘겨줬다. 천만 관객을 돌파할 때까지 거침없었던 질주가 멈춰설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의 천만 관객 돌파는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미 ‘해운대’를 통해 천만감독으로 거듭난 윤제균 감독은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50년대부터 현대까지를 관통하는 시대사, 아버지라는 감성코드를 활용해 흥행에 대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제작에 돌입했다.

지난달 17일 개봉 당일에는 2위로 출발해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국제시장’은 다음날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영화들이 개봉 2~3주차부터 가속이 붙는 흐름에 따라 100만 관객이 늘어나는 속도도 2~3일까지 좁혀졌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한국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세대부터 산업화의 최전선에 섰던 아버지 세대가 대거 극장을 찾았다. 정치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한 남자의 일생에 주목한 윤 감독의 선택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끌어당겼다.

물론 정치적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보세력은 영화를 두고 ‘독재시대 미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보수세력은 ‘아버지 세대의 삶’이라는 감성코드에 주목했다. 이는 정치세력은 물론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란을 낳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며 한동안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변호인’과의 비교로 전개됐다. 당시 진보세력의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개봉한 ‘변호인’은 한바탕 정치색 논란을 겪은 뒤 화제를 ‘인간 노무현’으로 전환시켰다. 부(富)를 버리고 정의를 택한 그의 모습에 대중은 열광했고, 정치적 이념을 떠나 사람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인터넷을 가득 메웠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싸움이 뜻하지 않게 전개됐으나, 이같은 정치색 논란은 오히려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유력 정치인이 모두 호평한 뒤 색깔론은 어느정도 수그러들었고, 화제는 ‘당시의 시대상’과 ‘아버지’로 좁혀졌다. 경쟁작들의 상대적 부진도 ‘국제시장’의 흥행에 큰 몫을 담당했다.

   
 

적수가 없는 가운데 ‘국제시장’은 13일까지 홀로 내달리다시피 했다. 그리고 개봉 28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4일 ‘오늘의 연애’와 ‘허삼관’ 등 만만치 않은 영화들과 격돌을 벌여 작은 차이로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기도 했다.

‘국제시장’은 약 한달 동안 정치적 논란 외에도 다양한 이슈를 생산해냈다. 처음으로 전 스태프와 표준계약서를 체결했고, 국제시장을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다시 주목받았고, 무엇보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교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제 ‘국제시장’의 흥행추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주목하고 있다. 정점을 찍고 이제 관객 수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최종 스코어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말씀하시던 이야기를 젊은 층이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 바로 그것으로 인해 세대와 세대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미디어펜=최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