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오락가락 대법까지 상고 분위기 확산…노사 갈등·사회적 비용 늘어

   
▲ 이동응 경총 전무
지난 1월 16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과거의 연장근로수당 연차휴가 수당 등을 재산정해 지급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비록 대법원 판결도 아니었지만 이 판결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서 판결이 내려지기 며칠 전부터 언론에서는 판결 결과를 예측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이 판결의 핵심은 고정성 인정 여부에 있었다. 정기상여금을 일할계산 해왔던 구 현대자동차 서비스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입사 이후 15일 미만 일한 근로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단체협약을 적용받고 있던 구 현대정공 출신 근로자와 현대자동차 출신 근로자들이 지급받아온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번 판결은 어떤 정기상여금이 고정성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리고 법원은 통상임금이라고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 3년 치 소급 청구를 인용하였다. 현대자동차의 연차수당 등의 지급 기준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3년치를 소급한다 하더라도 더 지급할 액수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판결을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하급심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들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에 신의칙이 인정될지, 지급일 재직자 한정 조항이 있을 경우 고정성이 인정될지 하는 것이 법원마다 달리 판단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법원에서 통상임금 판결이 나온다는 보도가 나오면 기업들과 노동계, 언론 모두 이번에는 과연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궁금해 하며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모습은 결과는 상당히 정확히 예측하면서 선고되는 형량이나 손해배상 액수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반적인 소송의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다.

   
▲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사옥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와 같이 통상임금 소송의 예측이 어려운 이유는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비록 매우 상세히 통상임금의 법리에 대해 설명했지만 여전히 불명확한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불명확한 부분들을 각급 법원의 법관들이 개인적인 소신이나 지식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법관들의 직업적 양심이나 소양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법관이나 법원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법률을 명확히 규정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할 필요는 있다. 예측가능성이 곧 법적 안정성이고 그것이 법치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률의 명확성은 1임금 지급기, 즉 매달 지급되는 급여만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보는 것으로 가장 분명하게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신의칙 인정 여부에 대한 법원의 태도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는 단체협약 규정의 효력을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노사간의 합의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사후에 그러한 합의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보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작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신의칙 법리가 제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러 하급심 법원들을 통해 그 신의칙 법리에 각종 내용들이 추가되어 가면서 지금에 와서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공기관 근로자들에게는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아 소속 근로자들이 3년치를 소급 받을 수 있고, 중소기업이나 경영상황이 어려운 기업의 근로자들은 전혀 소급 청구를 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모름지기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노사간의 자율과 합의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런데 종전의 관행과 합의를 관행과 합의를 무책임하게 뒤집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주면서, 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이 일방적인 부담과 손해를 입도록 하는 것은 옳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신의칙을 적용할 만큼 회사의 경영상황이 어려운지 판단함에 있어 회사가 소급하여 부담하게 될 추가적인 급여의 액수를 편면적으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회사의 매출액, 당기순이익이나 현금성 자산 등의 보유 규모 등 영업적․재정적 현황은 물론, 해당 업종의 시장상황 및 그와 관련한 피고의 투자 등 사업계획까지를 고려한 종합적인 검토가 요구되고, 그러한 상황들을 검토한 결과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고 하여 신의칙이 인정되기가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하급심 법원들에서 내려지는 통상임금과 관련된 판결들이 당사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통상임금 소송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상고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확산되는 것도 염려스러운 분위기이다. 법률분쟁이 장기화될수록 기업의 사업에 대한 집중력도 낮아지고 근무 분위기나 회사의 노사문화도 매우 경직되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분쟁 해결 과정에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방법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법률 규정을 정비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계속 중인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에서도 임금을 최우선 논의과제로 삼아 통상임금 문제를 어떻게 법제화할 것인지 숙고하고 있다. 국회도 통상임금 관련 법규정을 현실에 맞도록 개정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지 자각하고 속히 입법적 개선에 착수해주길 바란다. 더불어 법원도 더욱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일관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