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근본 해결책 될 수 없어…무상보육에 매달린 부모탓도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어린이집 폭력, 부모 책임인 이유

하나가 터지자 여기저기서 더 터지고 있다. 전국 모든 어린이집에서 어린이 영유아에 대한 폭력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어린이집에서 계속해서 존재했던 문제라는 얘기다. 어린이집 CCTV가 있는 곳에서 그 정도로 폭력이 일어났다다면 CCTV가 없었던 곳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국 4만5000개 어린이집은 모두 같다. 운영구조가 다른 집이 하나 없다. 공은 정부 공무원, 정치인에게로 넘어갔다. 청와대와 국회, 지자체장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목 놓아 어린이집 폭력 근절을 외친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어느 때보다 바쁘다.

원인 분석은 쏟아지고 있다. 폭행을 직접 연출한 교사 개인의 성향 문제에서부터 교사들 처우의 문제, 어린이집 교사 선발의 문제, 원장의 비리 전횡, CCTV 도입을 지금껏 반대했던 여야 국회의원들, 어린이집 운영구조의 문제, 공무원들 정치인들의 대증요법식 처방, 눈가리고 아옹하는 수박 겉핥기 식 단속이나 행정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 15일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가해자인 보육교사 양모씨가 인천 연수구 연수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린이집의 본질, 왜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까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욱 큰 본질을 놓치고 있다. 바로 아이의 부모, 엄마 아빠의 문제다.

사람들은 CCTV가 없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CCTV를 어린이집 모든 방에 매달자고 부르짖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인천 어린이집을 비롯한 각종 폭력 고발 사건들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CCTV 영상이 있는 곳에서 벌어졌다. CCTV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CCTV의 유무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물론 CCTV는 달아야 한다. 달아서 모든 어린이집 교사들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은 누가 내야 할까. 정부? 지자체? 어린이집 원장? 아니면 교사? 어린이 영유아의 부모들?

“CCTV를 빼곡히 달기만 한다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1984>와도 같은 멋진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감시하고 채찍만 가한다 해서 인간의 본성을 가리고 지울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이집이 문제라고들 한다. 말을 못하는 어린 영유아를 대상으로 어떤 일이 그곳에서 벌어지는지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른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질문은, “근데 왜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까?” 이다.

어린이집, 무상보육, 정부가 아이를 키운다?

정부의 사회주의식 운영지침과 무차별적 규제로 인해 어린이집은 정상적으로 매뉴얼대로 운영하려면 적자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 처우는 열악하고 원장들은 이윤을 낼 수 없다. 열심히 잘 하려는 인센티브가 생길 수 없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지옥도와 개미지옥은 연출되어 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어떻게든 (폭력적인 방식이든 비폭력적인 방식이든) 하루에 10시간씩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누가 키워야 할까. 말을 못하는 등 자기의사표현을 전하지 못하는 영유아는 대체 누가 키워야 할까.

답은 가족이다.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삼촌이든 이모든 우선적으로 가족이다. 가족은 피로 맺어져 끊을 수 없는 연대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현재다. 원초적인 사랑이고 관계다. 생명의 시작이다. 일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 달리 가장이 아니다. 우리는 아내와 남편, 자식을 생각해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간다.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어린이집은 이를 끊어버리는 매개체다. 정부가 엄마 아빠 가족 대신 아이를 키워주겠다고 제안하는 손이다. 이를 잡는 부모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 인천 어린이집 원장이 영유아 학부모들에게 보낸 문자.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제는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전면에 나섰다. 공무원, 정치인들이 나서서 공짜로 아이를 맡기라 한다. 그렇게 부모들의 타락은 시작된다. 아이를 맡길 필요가 없는 전업주부들까지 아이를 맡긴다. 정부가 어린이집을 지원하는데, 맡기지 않는 엄마가 바보란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엄마들은 아이를 맡기고 들로 산으로 백화점으로 카페로 다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를 잘 키우라며 젊은 부부에게 용돈을 얹어준다. 정말 멋진 세상이다.

세상은 언제나 각박하고 힘들었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 모두 그래도 아이들을 키웠다. 자식들만 잘되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버텼다. 맞벌이든 혼자 일하든 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람으로 삼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세상은 달라졌다 하지만 진짜로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다. 사람들이 달라졌다. 사람들을 둘러싼 세상은 언제나 고된 역경의 길이었다. 삶은 고단한 것이다. 노력 없이 고통과 인내 없이 무언가를 얻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세상의 진리다. 달라진 건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는 세상과 회사를 탓한다. 부모들은 아이를 비싸게 키워야 하는 세상물정을 탓한다. 아이의 가치를 부모 멋대로 재는 격이다. 아이를 낳았는데, 부모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할지 모르는 ‘애’어른들이 많다. 젊은 부부들은 점점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긴다. 가족이 아닌 정부에게 맡긴다. 친척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내어놓는다. 아무 말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그렇게 남겨진다.

부모라면 핑계대지 말고 아이를 책임져라

아이의 부모는 당신이다. 당신이 아이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그 아이가 자기 앞가림을 할 성인이 될 때까지 말이다. 맞벌이? 매일 같이 오르는 물가? 전세 월세 집 문제? 회사 구조조정과 갑을? 아이와 비교하면 모두 다 핑계다. 당신이 부모라면 핑계대지 말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무상보육, 어린이집 모두 다 남의 손에 자기 아이를 맡기는 꼴이다. 초중고교의 무상급식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 자녀가 먹는 밥을 정부에서 알아서 먹이겠다는 말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의 본질은 "아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자기 아이 돌보기를 기피하려면 왜 낳았는가. 부모라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정부 공무원, 정치인은 당신이 아이를 돌보는 가치를 몇 천원, 몇 만원으로 정해서 그 가격대로 어린이집이 키우라 한다. 당신이 자식을 돌보고 키우는 가치를 어떻게 몇 만원으로 정할 수 있을까. 언어도단이다. 부모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부모라면 핑계대지 말고 아이를 책임져라. 아무리 훌륭한 교사라도 부모만한 교사는 없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