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청구 공소시효 3...1년 가까이 여전히 1심 진행 중

[미디어펜=정단비 기자] "사죄드립니다"
 
지난해 초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지겠다고 했던 카드사들이 막상 피해자들의 보상에는 뒷짐을 지고 있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실망을 넘어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본인의 피해사실을 직접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등 피해 고객들에게 책임을 넘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 카드사 정보유출 당시 손병익 농협카드 부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이 고개숙여 사죄하는 모습이다./뉴시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등 3개의 카드사에 대한 공동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당시 고객들에게 고개숙여 사죄하며 카드사의 수장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모습과 달리 소송을 제기한 고객들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요구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평강의 관계자는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본격적인 재판은 들어가지도 못한 상황"이라며 "카드사의 과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카드사에서는 소송위임관계와 정보유출 당사자가 맞는지 여부 등이 확인돼야 한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평강 관계자는 이어 "피해사실을 모두 카드사에서 알고 있고 명단을 넘겨주면 카드사에서 일괄적으로 조회가 가능함에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본질을 흐리려고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청구에서는 피해사실의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다. 하지만 이들은 원고가 다수인데다가 카드사에서 정보유출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갖고 있는 이번 소송의 성격상 입증책임을 전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흥엽 법률사무소의 이흥엽 변호사는 "과거 이와 유사한 사례의 소송에서는 하나로텔레콤에서 피해상황을 조회했었다""카드사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흥엽 변호사는 이어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공소시효가 3년으로 카드사들이 소송을 지연시켜 추가 소송을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이 같은 카드사들의 태도에 지난 16일 원고측 대리 변호사들 일부가 모여 대해 대책논의를 갖고 앞으로 재판 진행단계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공동소송 법무법인 바른의 한 변호사는 "카드사에서 원하는 피해사실내역을 조회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나 카드사 영업점 등을 통해 해야한다""온라인 홈페이지 조회는 컴퓨터 다루는 것이 익숙치않은 경우 쉽지 않을 뿐더러 카드정보유출 내역을 확인하는 란을 찾기 힘들 뿐더러 또한 카드사 지점을 통하는 것도 번거롭고 시간적인 측면이나 비용 낭비"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카드사들은 법원의 요구와 법률이 정해진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해당 카드사의 관계자는 "정당한 소송대리관계인지 여부와 실제 피해자인지 확인이 필요해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것"이라며 "소송은 법원이 권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진행절차에 따르는 것이지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도 "카드사의 과실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일부러 법의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인터넷 채널을 통해 소송신청을 위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피해자가 아님에도 소송에 참여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어 확인이 필요했으며 법의 원칙에 따라 진행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카드사의 정보유출 관련 소송에 대해 지켜보고는 있지만 별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 카드사들에서 따로 보고하는 것은 없다""민사소송이므로 금융위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억건이 넘어 손해배상 금액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돼 카드사 입장에서도 조심스럽겠지만 특별히 카드사들에서 고의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만약 고의적으로 필요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는 등 지연을 시킨다면 권고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이 제2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할 경우 발생 금융회사에 엄격한 법집행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간 정작 정보를 유출당한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결국 소송을 통해서만 정보 유출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었으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개인정보유출 사건 관련 소비자소송 판결을 보면, 고객정보 유출로 약 1125만명이 피해를 보고 4만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GS칼텍스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2013년 중국 해커가 네차례에 걸쳐 옥션의 웹서버 중 하나에 침입해 피해자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자사 컴퓨터로 내려받아 전체 회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옥션 측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지 않아 14만명이 대표소송한 건을 기각했다.
 
다행히 지난 12일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발의된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처리됐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신용정보 이용자가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고객정보를 유출해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개인정보 유출 때 금융회사가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토록 하고 관련 매출의 3%까지 과징금을 물게 한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은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게 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번 카드사 소송에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입증책임 등 법의 미비한 점 있다""이것을 새로운 법의 취지에 준하여 감독당국 당국이 금융회사로 하여금 적극적인 보상의 자세를 임하도록 지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