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고위당국자 “미국 민주당 외교정책 DNA에 같은 정신 있어”
이인영 “바이든 대북정책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성과 존중 담기길”
세이모어 “싱가포르 선언, 주요 요소 담아 협상 토대되기에 충분해”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리뷰가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롭게 수립되는 대북정책에 북미 간 ‘싱가포르 선언’이 계승될지 여부가 국내외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는 북한 역시 주목할 대목으로 미국의 새 정부가 정책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이전 행정부가 체결한 북미 간 합의를 계승할 때 앞으로 북한 문제에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란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29일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2000년 북미 코뮤니케를 언급하며 “바이든 정부가 속한 미국 민주당의 외교정책 DNA에 싱가포르 합의 정신 정도는 있다”고 본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클린턴 정부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2000년 북미 코뮤니케를 이끌어냈고, 미국 관료로서 휴전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던 일을 돌이켜볼 때 당시에도 비핵화를 포함해서 평화, 북미관계 개선 문제들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선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한 2018년 6월 싱가포르 선언이 계승된다면 다시 북미대화에 응할 명분을 갖게 된다. 문재인정부로서도 북미가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단계에서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그는 또 “오바마 정부 때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도 성사됐다. 이제 바이든 정부가 굳이 싱가포르 선언이나 하노이회담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협상 테이블에 나가보면 서로가 맞춰볼 대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워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청와대·뉴스1·백악관

통일부는 전날 ‘2021년 남북관계발전시행계획’을 확정하고 5월 하순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및 진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단절된 남북연락채널을 복구하고, 코로나19 방역과 군사회담 등 현안 협의를 시작해 고위급회담 재개로 남북 간 대화·협력체계를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정부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곧 발표될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에서 반드시 반영되기를 바라는 기조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과에 대한 존중”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남북 당국간 대화를 희망하지만 그 이전에 민간 차원에서 교류나 접촉이 먼저 활성화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상반기 중에 남북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존중하고, 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남북 간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통일부는 ‘당국간 대화 우선’에서 벗어나서 민간교류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협력으로 남북 교류·협력의 토대를 만들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도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싱가포르 선언 계승 필요성이 제기됐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29일 미국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선언에 대해 “완벽하지 않고 흠이 있지만 협상 토대가 되기에 충분하다”며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보, 미북관계 정상화 등 주요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지 않으면 미북 두 정상의 공통 견해를 담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기에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틀로 싱가포르 선언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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