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원균, 박문수...그들이 걸은 길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수도권의 최남단에 있는 평택시의 진위면은 평택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진위는 조선시대까지는 진위현(振威縣)이란 독립적 고을이 있었던 곳이다. 구한말에는 진위군으로 불렸다.

위엄을 떨친다는 고을 이름에 걸맞게, 이 곳은 조선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에 각각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조선의 대표 인물들이 나고 자란 고장이다.

바로 삼봉(三峰) 정도전, 원균 장군, 암행어사 박문수가 그들이다. 3명 모두 잘 알려진 역사 인물들이다.

정도전은 너무나도 유명한, 조선왕조 창건의 주인공이다. 그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들과 이성계 세력과의 연합으로, 고려왕조를 타도하고 조선을 개창한 것이다.

이곳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에 정도전의 후손들인 봉화정씨 집성촌이 있다. 이 곳에 삼봉기념관(三峰記念館)과 사당 등, 유적지가 있다.

원균(元均)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최대 라이벌이자 정적이다.

그를 자주 비난했던 난중일기의 영향인지, 이순신을 몰아내고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됐다가 조선 수군이 전멸당한 탓인지, 원균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원균은 지장이나 덕장은 되지 못해도, 전장에서 물러섬이 없었던 용장임엔 틀림없다.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1등공신이고, 원릉군(原陵君)이란 군호까지 받았다. 역시 진위면 도일동에 생가터와 묘, 사당과 기념관 등이 있다.

박문수(朴文秀)암행어사의 대명사.

진위면 봉남리에서 출생, 1723년 문과에 합격해 관직의 길로 들어섰다. 세자 전용 교육기관인 시강원에서 영조와 인연을 맺고, 왕명을 받들어 전국을 돌며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보살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 ‘분무공신 2에 책록되고 영성군으로 봉해지기도 했다.

이 세 사람이 모두 진위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조선 역사의 길이라 할 만하다.

   
▲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 내부/사진=미디어펜

수도권전철 1호선 진위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간다.

역 광장에 보호수(保護樹)240~250년 된 회화나무가 반겨준다. 가지는 다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새 가지가 자라고 있다. 위대한 생명력이다.

길 건너편에는 진위파출소가 있고, 그 옆으로 도로가 뻗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간다.

도로 한쪽에만 메타쉐콰이어 가로수들이 하늘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얼마 후, 왼쪽에 매일유업 중부공장이 보인다

길 왼쪽 식당 오른쪽 계단 입구에 평택관광포럼간판이 있고, 오른쪽 아래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 왼쪽엔 평택북부진위방문자센타현판이 붙어있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박문수문화관 장승재 관장은 비무장지대(DMZ)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대학 겸임 교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관광업 경기가 얼어붙어, 서울 마포(麻浦) 사무실을 정리하고, 고향인 평택으로 내려왔다.

문화관 정면에 암행어사 박문수 연보(年譜)가 걸려있고, 오른쪽에 박문수 초상 복제본과 마패(馬牌) 사진이 있다. 말 다섯 마리가 그려진, 최고위급 마패다. 반대편엔 암행어사 박문수의 청렴과 위민정신을 계승한다는 플래카드 아래 7폭 병풍이 펼쳐져 있다.

다시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가니, 한국야쿠르트 공장도 보인다. 이 동네는 우유 및 유제품타운 인가보다.

현대봉남주유소를 지나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진위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하지만 진위향교(振威鄕校)를 향해 직진한다.

진위면 봉남리에 있는 진위향교는 1398년 창건된 것이다. 조선 건국 100여년 후, 임진왜란 200여년 전이다. 병자호란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위패만 모셔두고 제향만 올리다가, 1644년 다시 중수됐다. 대성전(大聖殿)에는 공자 등 27명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석전제를 올린다.

특히 진위향교는 전국 향교 중 풍수지리상 가장 으뜸으로 유명하다. 문필봉과 무봉산 남쪽 부산을 뒤로 하고, 앞에는 진위천 너머 퇴봉산이 안산이며, 좌우로 진위천의 충적지인 장안평이 펼쳐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향교 입구 옆 비각 안에는 수령들의 공덕비가 즐비, 진위현 관아가 근처였음을 말해준다.

향교 입구 홍살문은 다소 낡았지만, 오히려 친근감이 든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맨 안쪽 높은 곳에 대성전이 있다.

뒤를 돌아보니, 진위천을 건너는 왕복 시멘트 다리가 나타난다.

제법 물이 많이 흐른다. 건너편엔 진위천(振威川) 유원지도 있는데 레일바이크, 튜브 썰매장, 잔디광장, 족구장 등을 갖추고 있다.

정도전 마을을 향해, 들길을 걷는다. 광대나물, 애기똥풀 등 봄 들꽃들이 반겨준다.

도로변에 삼봉정도전선생기념관과 삼봉집목판(三峰集木版) 600m 전 안내판이 보인다. 삼봉기념관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을 새긴 목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이 대표 유물이다.

안내판 뒤로 정도전 신도비와 봉화정씨 세거비, 또 다른 비석이 있다.

이제 삼봉기념관입구다.

기념관 안에는 삼봉집 목판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영정 속 삼봉은 눈이 형형하고 부리부리한 게, 딱 혁명가의 상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 ‘불씨잡변’ ‘심기리편등 그의 저서들도 있다.

오른쪽 위에는 재실 격인 건물 만본재가 소박하다.

   
▲ 삼봉 정도전을 모신 사당 문헌사

그 옆으로, 삼봉의 사당인 문헌사(文憲祠)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문헌공이란 시호를 받은 삼봉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부조묘다. 홍살문이 당당하게 서 있다

삼봉기념관과 비슷한 모습으로, 단아한 삼봉의 초상화가 걸린 사당에는 유종공종(儒宗功宗)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유학과 종사’, 즉 조선왕조에 세운 공이 모두 으뜸이란 뜻이다.

뒤를 돌아보니, 마을 너머 부락산이 안산으로 버티고 있는, 명당자리다.

문헌사 왼쪽 밑 희절사(僖節祠)는 삼봉의 맏아들이자, 역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자헌대부 형조판서를 역임한, 정진(鄭津)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장자와 차자도 함께 배향돼 있다.

삼봉문학관을 돌아 다시 내려와, 마을길을 통과한다.

왼쪽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끼고 따라 내려가다가, 고속도로와 헤어져 야산 길로 접어든다.

드디어 원균 장군묘 입구다. 평택시에서 조성한 평안 해오름길안내판이 서 있다.

길을 조금 오르니, 재실인 모선재(慕先齋)가 보인다. 그 옆에는 원균길안내판도 있다. 모선재에서 원균 장군묘~원릉군기념관~양세충효정문~덕암산~원균생가터를 도는 코스다.

원균은 이 곳 도일동 내리에서, 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북방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워 경상우도수군절도사가 되고, 임진왜란 때 활약하다가 칠천량에서 패전, 전사했다. 그가 받은 선무1등공신 교서(敎書)는 희귀성이 인정, 보물 제1133호가 됐다.

모선재 바로 위,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내리저수지. 강태공들이 몇몇 보인다그 너머에 경기도기념물 제 57호 원균 장군묘가 있다. 홍살문(紅箭門)이 우뚝하다.

이 묘는 사실 시신이 아닌, 유품을 묻은 가묘. 진짜 유해는 찾지 못했다. 원균이 전사하자, 그의 애마(愛馬)가 신발과 담뱃대를 물고 고향집까지 천리를 달려와, 죽었다고 한다

집안 사람들이 이 말을 가상히 여겨, 원균묘 아래 작은 무덤을 만들어 줬다고 하는데, 작은 비석까지 있다.

묘 오른쪽에 원릉군기념관이 있고, 마을길 벽에는 장군을 그린 원균길 벽화가 반겨준다. 우측 언덕 위에는 원균의 사당 원릉군사우(原陵君祠宇)원주원씨 임란 15공신 정문도 보인다.

도로를 따라 송탄 쪽으로 간다

아파트단지 사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를 택했다. 얼마 후, 좀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이 곳은 반지산이다. 동네 야산인데, 가벼운 운동 삼아 오를 만하다. 오랜만에 푸른 숲과 흙길, 한적한 정자를 만나니, 참 좋다. 정상에는 태극기와, 현충탑(顯忠塔)이 솟아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산을 내려와, 다시 도로를 따라간다평택시 송탄출장소 앞을 지난다

이제 곧 송탄역(松炭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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