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혀온 일본과 이란이 8강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시며 슈틸리케호의 부담이 한층 줄었다.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축구의 좋은 징조임에는 틀림없지만 앞선 두 강국의 행보를 교훈삼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내부에서 싹트는 자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우승에 대한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 아시안컵 우승후보 일본-이란 탈락…최대의 적은 '자만'/SBS스포츠 방송 캡처

23일 있었던 8강전 2경기에서 대다수의 전망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일본과 이란이 탈락하고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UAE)가 4강에 올랐다.

한국의 준결승 파트너로 이라크가 결정된 순간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고 간 것은 안도감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아시아 랭킹 1위 이란(51위)을 피한 것이 반가웠다.

여기저기서 환호의 함성이 감지됐다. TV로 승부차기 결과를 지켜보던 외신 기자들은 한국 취재진을 향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설욕의 상대를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편한 상대를 만나 다행이라는 선수들의 반응을 전했다.

이라크의 FIFA랭킹은 114위로 이번 아시안컵 참가국 중 세 번째로 낮았다. 쿠웨이트(125위), 팔레스타인(115위) 다음이 이라크다.

현재의 계량화된 수치를 기준으로 들이민다면 약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라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2007년 우승컵을 들어올린 저력이 팀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특유의 끈끈한 축구로 8강까지 올랐다. 일본에게만 1골을 허용했을 뿐 2경기 동안 무실점 했다. 이란과의 8강에서는 3골을 먹히고도 3골을 넣는 집요함으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따냈다.

이라크는 과거 아시안컵에서도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아 왔다. 1972년과 2007년 대회에서의 두 차례 맞대결 모두 승부차기 끝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의 국제 대회에서 상대를 얕잡아 봤다가 큰 망신을 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알제리가 대표적인 예다.

러시아·알제리·벨기에 가운데 확실한 1승 제물 상대로 인식했다. 하지만 2-4로 대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자만을 경계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을 경험한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는 "한국은 약팀을 만나면 방심을 해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경향이 있었다"면서 "이번 만큼은 선수들 사이에서의 그런 방심은 없다"고 말했다.

김진수(23·호펜하임)는 "8강에 오른 팀들은 그만큼 전력차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라크는 끈끈한 팀이다. 하지만 우승을 위해선 언제 만나도 만나야 할 팀"이라고 자만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