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뉴욕향 뱃삯 박스당 1만달러 중반대, 유럽향도 5천달러 넘나들어
역대급 운임에도 한국이 가장 염가…해운업계 중국‧동남아 선복 우선배정
‘컨’ 장치기간 10일서 반토막…몰려드는 비용청구서에 수출업계 ‘비명’
세계 해운시장이 코로나19에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HMM을 주축으로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의 강화된 공적금융이 국가 해운경쟁력을 신장한 모습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우리나라 선박금융의 현주소를 돌이켜보고, 미래 정책금융이 나아갈 길을 4회(➀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해운물류시장…“수출 포기할 판” ➁집행률 ‘1.5%’…산은 기안기금 안 쓰나, 못 쓰나 ➂HMM, 국적 중소선사보다 141배 금융수혜…격차 배경은? ➃K-선박금융의 길, ‘금융-해운-조선’ 상생 패키지 마련해야)에 걸쳐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1. “최근 선복난에 화물을 보관할 곳은 없고 해상운임은 치솟다보니 공장가동을 1~2개월 중단하는 곳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공장은 서플라이체인이 생명인데 운임이 부담스러워 중소협력업체들이 수출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자화자찬할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A 물류기업 관계자

#2. “요즘 선복을 확보해도 박스가 없어서 선적예약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선착순으로 경매하듯 박스확보에 나서다보니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요. 여기에 운임도 너무 치솟다보니 돈 없는 수출기업들은 수출을 포기해야 할 판입니다.” - B 물류기업 관계자 

   
▲ 부산신항 항공사진 /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세계 해운시장이 선복(화물 적재칸)과 컨테이너 부족으로 운임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해운물류업계와 수출‧제조업계가 비상이다. 

코로나19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복소비 수요 증가세가 두드러지면서 때아닌 해운호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사들도 급증한 수요에 발맞춰 유휴선박과 박스 확보에 나섰지만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화주들이 선사에게 지불하는 운임은 중국‧동남아보다 현저히 낮아 원양항로를 뛰는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시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선사들의 핵심노선인 동서항로(아시아-북미항로‧아시아-유럽항로) 운임이 매주 강세를 띠고 있다. 

중국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 현재 중국 상하이발 북미 서안향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FEU=12m 컨테이너)당 4608달러를 기록해 전주 대비 415달러 하락했다. 다소 진정 국면을 보였지만 올해 평균운임인 4181달러에 견주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같은 날 동안행 운임은 7036달러를 기록해 한 주 전보다 617달러 상승했다. 역시 평균운임 5119달러보다 1900달러 가량 높은 상황이다. 

유럽항로는 수요 증가와 더불어 지난 수에즈운하에서의 에버기븐호 좌초사건 등에 따른 병목현상이 겹치면서 5주 연속 상승세다. 같은날 상하이발 로테르담(유럽)향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6m 컨테이너)당 4678달러로 전주 대비 소폭 올랐다. 올해 평균치인 4156달러에 견줘 500달러 이상 높은 편이다. 지중해향 운임도 TEU당 4803달러를 기록해 한주 전보다 98달러 인상됐다. 

중국발 운임이 매주 초강세를 띠면서 한국시장도 연일 고공행진이다. 이날 현재 부산발 미 서안 롱비치행 운임은 FEU당 6000~7000달러대를 넘나들고 있으며, 미 동안 뉴욕행은 1만달러 중후반대를 향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북미항로는 5월1일부터 선사와 물류주선업체(포워더) 간 연간계약 개념인 ‘SC’를 맺지만 매주 운임이 폭등하면서 무의미한 상황이다. 

한 포워딩업체 관계자는 “올해 SC 운임은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인상됐는데 선복난이 극심하다보니 SC로는 선적예약도 못한다. 프리미엄을 무조건 내야 하는데 이마저도 중국‧동남아보다 낮은 편”이라며 “(선적예약이 됐다는 조건으로) 자동차부품은 1~2주, 일반 화물은 3~4주씩 롤오버(선적 지연)되고 있다. 전 선사가 한 달간 예약을 받지 않아야 현재 접수된 화물들을 겨우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멕시코 등 남미서안 노선도 TEU당 1만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마저도 선사들이 선적예약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수주일의 선적 지연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이다. 미 동안과 멕시코 노선은 현지 현대‧기아차 공장과 관련 자동차 부품공장 물량이 압도적이다. 반조립제품(CKD)을 수입해 현지에서 완성차로 조립하는 구조다보니 부품을 제때 수혈 받지 못하면 사실상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외 유럽향 운임도 TEU당 50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만년 적자노선’으로 취급받던 동남아를 비롯해 한일‧한중항로 등 아시아역내항로도 최근에는 활황세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용선료(선박 임차료)가 급등하고 있고 중국 운임이 좋다보니 중국 위주로 선복을 배정하고 있다”며 “선박이 부족하면 박스가 있고, 박스가 부족하면 선박이 남다보니 프라이싱(운임 책정)도 월 1회하던 걸 최근에는 주 1회로 줄이거나 때에 따라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 부산신항 항공사진 /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전 항로의 운임 폭등으로 해운업계 위상이 하늘을 찌르면서 그동안 ‘운임 후려치기’를 주도하던 수출‧제조업계가 선사에게 끌려 다니는 형국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요즘 해운물류업계에서 판검사 위에 선사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며 해운업계의 입김이 세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운임 고공행진에도 한국발 운임이 중국‧동남아시장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의 ‘한국 패싱’이 거세지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선사들이 한국발 선복을 대거 줄여 두 시장에 몰아주는 것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외국적 선사들은 본사 정책에 따라 선복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선사로선 중국‧동남아에 선복과 박스를 우선 배정하는 게 시장논리상 당연한 것”이라며 “한국은 중국보다 물량도 부족하고 운임도 저렴하다. 한국은 프리미엄을 포함해 6000달러를 내겠다는데 중국에서는 즉석에서 1만달러, 1만5000달러를 내겠다는 포워더들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품목이 다양한 한국화주들의 화물도 선택적으로 선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량화물‧리퍼(냉동냉장)화물‧위험물 등은 선사들이 예약을 기피하고 있다. 최근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도 ‘위험물’로 분류돼 현지 차량생산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한 전기차 배터리업체는 80TEU를 내보내야 하는데 (선사들이 기피해) 한 달 간 부킹도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외국적 선사들의 공백은 국적 원양선사인 HMM과 SM상선이 임시선박을 대거 투입하며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 중견 포워딩업계 관계자는 “수출물량은 별로 늘지도 않는데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 매년 선적하느라 전쟁이다. 요즘은 분단위로 부킹이 마감돼 ‘묻지마 예약’을 해야 한다”며 “HMM이 임시선박을 투입한다지만 P(프리미엄)가 상당하고 선복도 거의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수출이 늘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데 선복과 박스가 부족한 데 따른 현상을 곡해(曲解)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의 1분기 컨테이너 물동량을 놓고 보면 수출화물은 지난해보다 줄어든 상황이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1분기 총 물동량은 지난해보다 0.1% 줄어든 552만 4000TEU에 불과하다. 수출이 125만 6000TEU에서 125만 3000TEU로 줄었고, 수입과 환적만 124만 8000TEU, 291만 2000TEU로 소폭 늘어났다. 부산항의 환적화물 점유율이 52.7%에 육박하면서 최근의 물류대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1분기 영업실적을 발표한 HMM도 전 항로에서 수송한 컨테이너 물동량이 93만7660TEU로 전년 동기 88만4729TEU 대비 약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송실적이 늘어난 건 고무적이지만 최근 해운물류시장이 역대급 호황인 걸 고려하면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한편 환적화물과 수입화물이 부산항을 가득 메우면서 최근에는 물류창고 등 각종 부대비용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통상 선사들은 안정적으로 화물을 선적하기 위해 화주에게 부두에 무료로 장치할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한다. 일종의 물류창고처럼 화주들이 화물을 쟁여두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가 제공하던 부두에서의 약 10일간 무료장치기간이 최근 ‘선박 접안 후 5일’로 반 토막 났다. 선박들이 중국에서 예정보다 오래 머물면서 부산항 접안일정을 제때 못 지키다보니 일정이 명확해질 때부터 화물을 장치할 수 있도록 조정한 것이다. 제공기간을 하루 초과할 때마다 물류비용이 급증하게 되는 만큼 장치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수출화주들의 비용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최근 장치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창고료와 운송료 부담도 늘어났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1~2개월씩 공장가동을 중단하거나 폐업하겠다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며 “어떤 업체는 물건 둘 곳이 없다보니 오히려 국내에 공장을 만들려고까지 한다”고 말했다. 

   
▲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 사진=HMM 제공


해운물류업계는 언젠가 해운시장이 정상화되겠지만, 최근의 운임 고공행진 현상은 대체로 올 연말까지 이어질 거로 내다보고 있다. 오랜 장기침체에 해운업계가 신음한 만큼 선복을 감축하거나 항로를 합리화하는 식으로 운임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고 나면 선적되던 화물도 줄어들 거로 예상했는데 별 차이가 없다”며 “올해 한 달정도 비수기가 있어도 연말까지 호황은 계속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중국 노동절, 일본 골든위크 등 연휴효과로 다소 수요가 주춤할 거로 예상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 당분간 주요 항로 운임이 현 수준을 유지할 거로 보인다”며 “정부가 사상 최대 실적 얘기를 논할 때가 아니다. 비수기에도 적자를 인내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간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소석률(선복 대비 적재비율)이라는 게 통계학적으로 75~83%만 채우면 호황이라 봐야 한다. 운임이 높을 때 악착같이 90% 이상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게 예전부터 해운업계에 내려오는 지혜인 셈”이라며 “선사들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펼치기보다 선복을 조절하는 식으로 합리적인 운임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호황이 내년을 지나 2023년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