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모든 산업과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한 가지 꼽는다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모든 기업들이 똑같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모두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제품군의 종류를 확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다른 경쟁자들과 똑같아져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여기 동일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독특한 전략으로 꾸준히 시장을 지배하는 '물건'들이 있어 주목된다.

[미디어펜=김태우기자]이제는 국민 중형 세단이 된 소나타는 1985년에 스텔라의 고급형으로 출시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대표하는 중형 세단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로 성장했다.

소나타는 현재 현대차의 승용차 중 최장수 브랜드이며, 그랜저와 싼타페, 맥스크루즈 등과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을 정도로 모든면에서 인정받는 자동차다.

   
▲ 대한민국 중형 세단의 자존심인 현재의 소나타를 있게 해준 2세대 소나타/현대자동차

소나타의 차명은 고도의 연주 기술이 요구되는 4악장 형식의 악곡인 소나타에서 따온 것으로 혁신적인 성능·기술·가격을 지닌 종합 예술 승용차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85년 10월에 처음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소나타는 우리나라에 중형차 대중화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 중형차 모델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과 설계 등을 우리나라 기술진이 완성한 국산 고유모델이자 단일 차종 최장수 브랜드라는 점에서 소나타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985년 출시된 소나타는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아 2년 만에 단종 되었지만 1988년 6월에 출시된 새로운 2세대 모델(Y2)이 큰 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델을 원조 소나타로 기억하고 있다.

2세대 소나타는 1980년대 중반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미국 시장을 겨냥한 수출 전략형 모델이었지만 1986년부터 이어진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3저 현상‘으로 국내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되면서 오히려 내수 시장에서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소나타가 출시되던 때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1980년에 159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87년에는 3110달러가 되었고 당시 월급이 많이 올랐거나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큰 돈을 벌게 된 사람들이 자동차를 쉽게 구입하는 ‘마이카 붐‘의 시대였다.

또한 이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1988년에는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즈음하여 세계화, 개방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계속>

   
▲ 대한민국 중형 세단의 자존심인 현재의 소나타를 있게 해준 2세대 소나타//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