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경영협의회 등 도입땐 '노조 천하' 밥그릇 싸움 불보듯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기업의 이해관계자라면 누구나 기업의 주인?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주식회사의 경우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이 주인이며, 개인회사의 경우 회사 자본금을 대고 대표 직함을 맡고 있는 이가 주인이다. 선키스트 FC바르셀로나와 같은 협동조합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식 혹은 투자금의 가중치만 다를 뿐이지 기업의 주인은 그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도 기업의 주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주인의 범위를 넓혀서 기업 근로자 뿐 아니라 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업체, 기업을 둘러싼 일반시민들도 기업의 주인이라고 칭한다. ‘이해관계자 모델’이라는 이론을 거론하며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해관계자 모델에 따르면, 기업의 비용을 대고 이에 투자했던 사람들도 주인이지만 근로자들 협력업체 시민들도 주인이므로 모두가 함께 기업 경영을 논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 속담은 아랑곳 않는 자들이다.

“100명이 한 마리의 토끼를 쫓는 것은 토끼 한 마리가 100마리로 변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토끼의 소유권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 중국 법가 상앙의 말이다. “노동자든 협력업체든 시민이든 기업의 이해관계자라면 누구나 그 기업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 현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말에 따르면 2년 전 삼성전자 노트북을 사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삼성전자의 주인이다. 나뿐만 아니라 삼성의 제품을 한번이라도 사용한 사람 모두 삼성의 주인이다. 멋진 세상이다. 모든 기업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나와 거래하면 상대방의 가게가 내 것이 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거기서 일하는 샤이니 온유의 것이며, 열혈 팬들의 것이 된다. 현대차 품질테스트를 통과한 후 현대차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등록하는 순간, 현대차는 내 것이 된다. 갑을 관계는 사라지고 모든 것을 모두가 소유하고 공유하게 된다. 공산주의의 도래다.

   
▲ 2014년 7월 1일, 제 36대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뉴시스 

아주 멋진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러한 짓을 ‘대놓고’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 말이다. 서울시는 지방공기업을 혁신한다는 명분으로, 산하 5개 공기업의 경영에 노조가 참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노조 추천 인사가 공식적으로 기업 이사회에 들어간다. 10~15명 중에 1~2명이 들어가는 것 같고 왜 그러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공기업의 사외이사들 및 이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점잖고 교양 있는 공기업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자리에서 대부분 체통을 지킨다. 공기업의 방만·부실경영을 타파하여 흑자 재정을 내려면 뼈를 깎는 각오를 해야 하는데, 두둑한 급여나 받아 챙기는 사외이사들 중 누가 전투적으로 나서서 기업 혁신을 꾀한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에 반해 노조 측 이사는 어떨까. 이사회에서 결정되는 수준에 따라 본인들의 처우가 결정된다. 공기업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력행사를 위해 노조가 전면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다. 노조 한 사람이라도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주인 행세를 하기 마련이다. 목소리 큰 노조 인사가 공기업 이사회의 주인공으로 올라설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필자의 섣부른 염려, 과도한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대기업 공기업으로 갈수록 우리나라와 같이 강성노조 일색인 나라가 또 어디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공기업의 주인은 노조가 아니라 시민

서울시는 이와 같은 ‘노동이사제’와 더불어 공기업 노조가 회사경영과 관련한 사안을 책임 있게 협의할 수 있도록 ‘노사 경영협의회’를 설치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공기업의 주인이 노조라는 착각이 든다.

공기업의 주인은 시민이다. 정부 지원금과 서울시 투자금을 더해 서울시 산하 공기업들이 만들어졌다. 정부 지원금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며, 서울시 투자금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다. 방만경영, 부실경영으로 인한 적자가 나면 그 적자 또한 시민들이 감당한다.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의 적자는 23조 6558억 원이다. 서울시민 한 사람 당 240만원의 빚을 진 셈이다. 이는 지금 현역으로 일하는 시민들이 내거나 나중에 태어날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돈이다. 서울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불쌍하다. 태어나면서부터 240만 원 짜리 빚쟁이로 낙인찍힌다.

서울시는 정신 차려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든 서울시 공무원이든 똑바로 생각했으면 한다.

서울시의 처사는 시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서울시 지방공기업은 시민이 낸 세금, 시민의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시민의 재산이다. 시민을 위해서 최고의 서비스를 최소의 비용으로 만들어 제공해야 하는 기업이며,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시민의 공복이다.

서울시 공기업은 서울시민의 재산을 나눠먹는 장소가 아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주인으로 삼고 싶다면, 노조든 협력업체든 이해관계자라는 사람들이 돈을 따로 내어 서울시 산하의 지방공기업을 인수하라. 빚 23조 짜리 기업들을 인수해서 부디 잘 경영하길 바란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