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과잉 무상 할당 등으로 시장 붕괴 우려 제기되기도
EU 집행위, 1조 유로 넘는 '유럽 그린딜' 발표해 활성화
배출권 거래소, 금융 중심 재편 또는 설립부터 전문 기관 계획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도입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행 7년차를 맞았다. 오는 7월부터는 3기 계획기간에 접어들어 유상할당 확대 등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그만큼 기업 부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배출권 거래 자체가 활성화 되지 않은 시장 왜곡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은 탄소배출권 3기를 맞아 변화하는 제도와 기업 리스크 등을 심층 분석하고, 거래활성화를 통한 제도 연착륙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탄소배출권 거래가 가장 활발한 유럽연합(EU)이 해당 제도를 시행한지 16년차를 맞았다. 과다 할당·재정 위기를 겪으며 배출권 거래제 자체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시행착오를 통해 현재는 시장 안정화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와 국내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럽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 배출권 시장인 EU ETS는 유럽연합(EU)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비용으로 줄이고자 하는 전략 차원에서 2005년 1월 1일 생겨났다. EU ETS는 20MWth 이상 연료를 연소시킬 수 있는 용량을 지닌 설비를 대상으로 한다.

2005년부터 1기 시범 사업이 시작됐고 3기인 현재는 28개 EU 회원국과 3개 비회원국 등 총 31개국이 1만4000여개 사업장과 배출권 거래제를 연계해 운영 중이다.

EU ETS는 교토 의정서 제17조에 의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골자로 하며 전세계 관련 거래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 유럽 지역에는 관련 전문 거래소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

2005년 4월 문을 연 영국 런던 소재 '유럽기후거래소(ECX)'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 배출권 거래소로, 유럽탄소배출권(EUA)·탄소배출권(CER)의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과 현물에 대한 거래가 이뤄진다.

2007년 12월 개장한 프랑스 파리의 '블루넥스트'에서도 EUA와 배출권 선물·현물 거래가 진행된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현물 거래 시장으로 청산과 인도가 실시간으로 이뤄져 타 거래소 대비 신속한 거래로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현재는 이와 같은 거래소들이 성업 중이지만 배출권 거래제도가 가장 활성화 돼있다는 유럽 역시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침체기를 지나왔다. 기본적으로 물건은 사고 파는 시장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 탄소배출권 역시 마찬가지다.

   
▲ 유럽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사진=EU 집행위원회

탄소 배출권 수요는 기업이나 기관의 배출량에 따르고 공급은 규제 기관의 초기 배출권 할당 총량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배출권 시장 내 공급 총량은 변화를 보이지 않고, 극단적으로 경직된 공급 함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의 제1기 유럽의 탄소 시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탄소배출권을 과잉 무상할당했기 때문에 가격이 0에 수렴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당시 시장 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30유로를 상회하기도 했지만 2기로 이월할 수 없다는 정책의 영향을 받아 기말에는 사실상 무가치에 가까운 가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때문에 배출권 공급에 유연성을 부여할 장치가 따로 없을 경우 가격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보여줬다.

이 때문에 EU는 배출권 가격 폭락 방지 목적으로 잉여 배출권을 다음 기수로 넘길 수 있도록 조치했으나 너무 많아져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기를 진행하던 당시에는 경기 부진에 따른 탄소 배출량 감소와 기후변화 협상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중첩돼 각 산업계의 배출권 수요가 줄어들었다.

실제 2013년 4월에는 탄소배출권 시장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EU 의회는 탄소배출권 공급을 줄임으로써 가격 폭락을 방지하고 각 기업들의 탄소 배출 비용 부담을 늘리는 방식의 배출권 거래제도 개혁 방안을 부결시켰다. 

EU ETS 내 배출권 가격은 2011년 8월 12.52유로를 기록했지만 2013년 4.37유로로 재차 가격이 고꾸라지는가 하면 결국 2018년에는 9.7유로로 마감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EU 집행위원회가 탄소 국경세로 통하는 1조 유로 규모를 넘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해 탄소 중립 정책을 본격화 했고, 이에 따라 배출권 거래도 활성화 분위기를 띠게 됐다.

EU 회원국들은 지난해 12월 탄소배출량 감소분을 종전 40%에서 2030까지 55%로 확대하기로 합의해 거래 기대감을 키웠다. 시장은 배출권 공급을 줄이겠다는 의미로 인식했고, 관련 소식에 배출권 가격도 급등했다. 가격 인상에 대한 기대감에 일부 EU 회원국들이 경쟁적으로 배출권을 사들인 점도 가격 상승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 2019년 EU 집행위원회는 탄소 국경세로 통하는 1조 유로 규모를 넘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해 탄소 중립 정책을 본격화 했다. 이로써 배출권 거래 활성화 분위기가 조성됐다./사진=EU 집행위원회

EU 집행위원회는 '2012년 유럽탄소시장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EU ETS 배출권 과잉공급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옵션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중 눈여겨볼 부분은 탄소가격의 하한선이나 가격관리예비분을 둠으로써 재량적인 가격관리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방안이다.

김용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배출권 최고·최저 가격을 당국이 직접 설정해 업소는 필요한 경우 규제자로부터 최고가격으로 배출권을 구입토록 하고 규제 기관은 배출권을 추가로 발행하도록 할 수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김 연구원은 "또한 필요할 경우 규제 기관에 최저 가격에 배출권을 판매하도록 해 배출권 가격 규제를 통해 시장가격을 최고가격과 최저가격 사이로 유지함으로써 배출권 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1기 시행 당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무상으로 탄소배출권을 배분했던 독일 정부는 2008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2기에는 다른 방식을 채택했다. 공급자(정부)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의 배출권 제도를 확립한 것이다.

이 외에도 독일 정부는 배출권 거래 제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독일배출권거래감독원(DEHSt)'을 신설해 해당 분야 행정의 전문성을 제고했다. 아울러 라이프치히 전력거래소와 프랑크푸르트 전력거래소를 합병해 유럽에너지거래소(EEX)를 출범시켜 EUA 파생상품과 현물거래·탄소배출권 선물거래를 다루도록 했다.

유럽의 주요 배출권 거래소 현황을 살펴보면 전력 기반으로 설립돼 점차 금융 중심으로 재편돼 운영됐거나 설립 당시부터 해당 분야 거래 전문 기관으로 계획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거래소가 현재 금융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국내 배출권 거래소 지정시에도 거래 시스템 등 기반 제도 등을 고려할 경우 거래 중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에서의 배출권 거래수요를 고려하면 주로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회사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전력 기반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는 있으나 신중을 기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한편 유럽 현지 기업들은 EU 당국 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25억유로를 투자한 이케아는 2030년까지 전 공급망의 친환경화 달성을 위해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앰비션 2039' 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 이상 확대해 2039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볼보는 2030년까지 생산하는 전 차종을 전기차로 100% 전환한다.

프랑스 에너지 관리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2030년까지 100% 신재생 발전전력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BNP 파리바 은행은 석탄화력발전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초과하는 고객과의 신규 거래를 중단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