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외교안보팀장
[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마주앉은 한미 정상회담은 ‘통미봉남’과 ‘안미경중’이란 말로 통하던 남북, 한미 관계를 보는 고정인식을 조금은 흔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한미 공동성명에서 ‘싱가포르 합의’는 물론 ‘판문점선언’ 존중과 남북 대화 및 협력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통상 미국과 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남한과 관계를 단절해온 북한의 태도에 변화를 촉구하는 문재인정부의 이른바 ‘북미·남북 관계의 선순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통하던 한국의 미중 사이에 ‘낀 관계’를 염두에 둔 듯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에 ‘경제 동맹’을 중요 의제로 삼았다. ‘백신 파트너십’은 물론 반도체 공급망 구축으로 한미 간 경제 협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는 이전 정부에서 쉽지 않았던 숙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으로 ‘동맹 회복’이란 평가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한미 정상회담 결과 한미동맹 강화에서 가시적 성과가 있었던 반면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재개와 관련해선 인센티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남북 협력을 유인할 견인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가령 금강산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언급이 없었고,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결의를 유지하려는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한미 정상이 ‘통미봉남’이란 고정인식에 변화를 줬지만 또 다른 당사국인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 이번에 바이든 정부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먼저 주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했고, 남북협력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강조해온 ‘작은 교역’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장관은 대북 현금 지원이 금지된 만큼 대동강맥주와 우리 쌀이나 분유, 금강산 물과 의약품을 바꾸는 물물교환 즉, 작은 교역을 추진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왔다. 안보리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인 만큼 우선 작은 교역으로 시작해 점차 ‘큰 교역’으로 발전시키자는 취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작은 교역이 뜻밖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만약 독일에서 대동강맥주 페스티벌이 열릴 정도로 관계가 개선된다면 북한의 핵포기나 대북제재 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한에 유독 자존심을 많이 내세우는 북한 입장에서도 물물교환이란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남북 간 소통만 잘 되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방역 강화도 이유가 되겠지만 역시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남북정상회담이 중도 결렬된 이후 북한 당국이 내린 남북협력 단절 조치가 가장 큰 배경으로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은 이날 판문점 인근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2021.4.27./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18년까지만 해도 남한 종교단체의 금강산 새해맞이 행사나 평양에서 열린 역도대회 참가 등 남한 민간단체의 방북신청이 활발했고, 북한으로부터 초청장만 받으면 우리정부의 승인도 수월했다. 문제는 크고 작은 사건 하나만 발생해도 남북 협력이 단절되는데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세차례나 진행했던 정부가 지금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남북 간 물물교환조차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북관계의 현주소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9월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평양 연설을 떠올려볼 때 한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이렇게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남북관계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전에 2018년 타미플루 대북 지원 무산 때부터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싶다. 시급한 의약품 지원마저 제재 대상인 운송 수단 때문에 막힌다면 작은 교역의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따라서 타미플루 지원 무산은 남북 간 교역의 신뢰에 큰 손상을 준 사건이었다. 안보리 결의란 현실의 벽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후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있어서 장애물을 없앨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그래서 성과를 거뒀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불행한 일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계기로 남북 간 방역 협력을 추진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려던 정부 당국의 큰 기대가 여태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인 셈이다.

남북 교역은 1988년 9월 7.7선언 발표 때부터 가동하기 시작해 1998년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관광으로 본격화된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2006년과 2007년엔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한국이 북한 경공업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단천의 지하자원도 받았다. 당시 기술자 파견 및 인프라 협력으로까지 협력이 확장됐다. 물론 남북 협력이 중단된 배경엔 남한정부의 성급한 판단도 있었지만 북한의 중대한 과오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는 필요하다. 남북 교역의 역사는 한번 중단되면 복원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과 중단 없는 교류의 역사를 가진 스웨덴이 갖는 지위에서 정치권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2019년 10월 북미 간 마지막 실무협상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1995년 북한이 유럽 각국 주재 대사관을 이용해 밀수를 저지른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 다른 여러 국가들이 주 평양 대사관 문을 닫을 때 스웨덴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사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에도 주북 스웨덴대사관은 억류 미국인 석방 등에서 역할을 해왔다. 북한과 스웨덴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엔 정기적인 대면 교류를 이어왔다. ‘지속성’으로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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