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피의자 장 중사 첫 조사 때 휴대전화 확보 안해
피해자 이 중사 숨진 뒤 국방부 보고에도 성추행 누락
장관 보고 뒤 참모총장 지시 받고도 보직 해임에 뒷북
기일이 된 결혼기념일…다음날 남편이 시신 발견 신고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성추행 피해를 신고하고도 두달여만인 5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여 부사관 이 모 중사는 부대 상관들로부터 회유와 은폐 강요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혼인신고를 마친 그날 밤 이 중사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에도 공군은 가해자로 밝혀진 장 모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물론 휴대전화나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조차 청구하지 않았다. 

이 중사 사망사건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나서야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고, 공군은 이 사건을 국방부에 보고하면서 성추행 피해 내용 보고는 누락한 사실도 밝혀졌다. 

군 검찰이 4일 ‘공군 여 부사관 성추행 사망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관련 비행단 등에 대한 전면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단이 이 사건을 이관받은 뒤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사가 사망한 지 10여일 만에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뒷북 수사’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과 관련해 후폭풍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라”고 지시한 만큼 군 검찰의 수사가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피해자가 신고를 했는데도 그것을 무마, 은폐, 합의하려고 하는 시도 앞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절망했겠느냐”며 목이 메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 서산 소재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모 공군 중사는 지난 3월 선임 장 중사의 강요로 저녁회식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차량 뒷자리에서 장 중사로부터 추행을 당했다. 이 중사는 즉각 항의하고 상관에게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지만 상관들은 “없던 일로 해주면 안되겠느냐” 등의 말로 회유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 이틀 뒤 2개월여간의 청원휴가를 냈고, 전출을 요청해 지난달 18일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출근했으나 4일 뒤인 22일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중사는 숨지기 전날인 21일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 모습까지 촬영해 남겼으며, 휴대전화에는 ‘나의 몸이 더렵혀졌다’ ‘모두 가해자 때문이다’라는 메모 등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영정과 위패가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여 있다. 2021.6.3./사진=연합뉴스

이 중사의 사망소식은 5월 31일 밤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다음날인 6월 1일 오후 7시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인 서욱 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를 넘겨받았다. 검찰단은 이관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6월 2일 새벽 장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그날 밤 그는 구속됐다. 공군은 다음 날인 3일 오후 3시 30분부로 노 준위와 노 상사를 보직해임 조치했다. 

이 중사 유족 측 대리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이날 오후 국방부 검찰단에 노 준위 등 3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며 “고소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선변호인을 포함해 추가로 고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준위는 이 중사의 상사로 피해 보고를 받고도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 준위는 또 이전에 이 중사를 추행한 협의로 고소된 상태이다.

일단 성추행 가해자인 장 중사가 구속된 상황에서 검찰단은 성추행 피해접수 후 사건의 은폐·회유·압박 여부와 보고 누락 등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5특수임무비행단은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후 전근을 간 부대로, 검찰은 해당 부대에서 사망 전후 관련 자료를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이 전날 이번 사건 외에 지난해 최소 두 차례 성추행 피해를 봤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앞서 5월 25일 공군 군사경찰이 이 중사의 사망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하면서 서류에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을 쏙 뺀 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성추행 피해 관련 내용을 포함한 사건의 세부 내용을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처음으로 보고했다. 서 장관은 이 총장에게 2차 가해 가능성을 포함해 사건을 엄정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유가족을 최대한 지원하고, 고인에 대한 순직 처리 등 관련 규정에 의거 최대한 예우하라고도 지시했다.

하지만 공군은 지시를 건성으로 들은 채 뒷북 수사를 계속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중사가 숨진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난 5월 31일, 20전투비행단 군 검찰은 장 중사를 조사하면서 비로소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국방부가 갖춰놓은 성범죄 처리 지침이 이번 사건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공군 내 수사기관뿐 아니라 성범죄 예방, 지원 등을 담당하는 공군 내 인사참모 부서와 국방부 인사복지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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