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로 출발 사업가로 승승장구…혁신과 창발 기업가정신 표상

서태지는 누굴까. 가수이자 기업가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난 알아요』. 우리나라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 곡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요는 서태지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2년 1월에 등장한 이 노래로 인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아이들을 비롯한 10대들의 호주머니가 가수들에게 열렸다. 1992년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가 연달아 히트를 친 시기였다. 1992년 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장기자랑을 준비했던 아이들 모두가 서태지와 아이들 랩과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다.

1990년대는 시내 곳곳에 레코드 가게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은 한 가게마다 시간당 40~50장 씩 팔려나갔다고 한다. 19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등장했던 밀리언셀러 가수들의 시대였다. 단일 음반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김건모, 발라드의 황제 조성모, 넥스트 신해철, 전람회 김동률, 패닉 이적, 토이 유희열, 자우림 김윤아 등 셀 수도 없는 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매력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YG엔터테인먼트로 성공한 기업가이지만, 당시 양현석은 랩을 좀 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꾼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알파와 오메가는 서태지였다. 거의 모든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에 서태지의 손길이 가있다.

   
▲ 2008년 서태지가 Tolga Kashif와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던 『The Great 2008 Seotaiji Symphony』의 모습. /사진=유투브 영상 캡처

서태지는 기업가의 전형이다. 기업가정신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혁신과 창발, 아이디어의 보고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기민함과 직관으로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이끌어냈다. 댄스음악, 락, 랩을 대중화함으로써 이전까지 없었던 시장을 만들어냈다. 수익의 빈틈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서태지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음악계에 종사한 기업가였다.

서태지는 10대를 음악시장의 소비자로 포섭했다. 1990년대 거의 모든 10대, 20대는 워크맨, 카세트플레이어, 데크,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면 온갖 가요를 들으며 다녔다. 이 열매는 1990년대에 함께 활동했던 다른 가수들이 함께 향유했지만, 그 공은 온전히 서태지의 것이다. 2000년대로 들어온 후 더 이상의 메가히트곡은 내지 못하고 있지만, 서태지는 여전히 서태지다.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의 오너일 뿐일까

이수만은 1970년대에 성공했던 젊은 신인가수였다. 그러던 이수만은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인생을 바꾸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당시 세계 최초, 전미 최초로 방영되었던 MTV를 접한 것이다. 현란한 앵글과 감각적인 영상, 매력적인 사운드로 가득찬 MTV 음악채널을 접하면서 이수만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수만은 기획사를 차린다. ‘보는 음악’을 통해 가수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1988년 춤꾼 현진영을 발탁해서 트레이닝 시킨다. 가수 현진영은 1992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에 가려 최고의 가수이지는 못했지만 성공적인 인기를 얻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최고로 평가 받았지만, 현진영 듀스 REF 등은 당대 댄스음악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1)

하지만 이수만은 고초를 겪는다. 현진영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마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고 이와 관련해 매니저들까지 수사를 받았다. 이현도, 김성재, 신동엽, 이홍렬 등은 회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SM을 떠나기도 했다. SM은 부도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당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들을 팔아 위기를 넘긴다.

   
▲ SM TOWN, 코엑스 아티움 소개 영상. /사진=유투브 영상 캡처(http://www.youtube.com/watch?v=kQO_NaWJHc0)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스토리는 모두가 목도한 대로다. HOT의 성공과 걸그룹 SES의 인기를 시작으로 신화,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한국 아이돌 시대를 이끄는 회사로 거듭났다. 철저한 트레이닝을 통해 한국시장 및 글로벌 음악시장에 통하는 가수들을 발굴해냈다. 보아의 일본 음악시장 제패 또한 SM엔터테인먼트의 철저한 육성시스템이 성공을 거둔 사례다.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는 삼성전자 제조업의 원리를 뮤직스타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재 한국 음악산업의 중흥을 리드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하나의 기업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스타라는 대중 상품을 만들어 내고 이로 인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SM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길을 걸어간다. SM NATION 선언, SM Passport(여권) 발급, 복합문화공간 SM TOWN 개장(코엑스 아티움), 홀로그램을 이용한 전 세계 동시 공연 등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하나씩 구현해 나가고 있다. 2)

서태지와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의 차이점

서태지는 기업가다. 매우 잘 나가는 1인 기업이다. 시장의 트렌드를 바꾼 기업가이지만, 20년 넘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시장을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는 점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는 이수만 역시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기업가다. 하지만 이수만은 1인 기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사를 키우고 사람을 모았다. 인재육성에 성공하자 더욱 많은 인재들이 몰렸다. 수많은 인재들과 더불어 회사를 더욱 성장시켰다. 이십 몇 년이 지나 SM엔터테인먼트는 한국의 음악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 음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류 가요, K POP 열풍의 근원이기도 하다.

서태지와 이수만은 닮은 것 같지만 다르다. 서로 다른 방향을 제시했고,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시장을 지배했다. 기업의 유무도 달랐다.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멋진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이 모든 게 기업의 힘이다.

물론 본질은 하나다. 어떤 방향이든 이에 박차를 가한 것은 이수만과 서태지가 함께 지닌 기업가정신이다. 그들은 성공을 향하여 달렸다. 그 결과 그들은 음악을 듣는 청중과 수많은 대중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이를 통해 부를 일구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1) 1980년대 후반부터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댄서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주노, 박남정, 박철우가 이태원의 터주대감이었다고 한다. 클론의 강원래 구준엽은 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였다. 양현석은 이태원에 갑자기 등장해서 판도를 바꾼 다크호스였다고 한다. 현진영은 양현석이 각광받던 시기에 나타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던 댄서였다. 현진영은 당시 양현석이나 이주노 양대 산맥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댄스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비보이라고 한다.
 

2) SMTOWN@coexartium은 홀로그램 공연, MD샵, 아티스트 체험, 전시, F&B 등 SM 아티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한국의 대중 문화를 즐기고 체험하길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상시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 해외 관광객들의 명소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복합문화공간 ‘SM TOWN’ 코엑스 아티움은 지난 14일 개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