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 기자]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대학시절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로 갓 언론사에 발을 디딜 때 ‘현장에서 기사를 만들어 오라’는 데스크 지시로 생전 한번 가본적 없는 인사동에 혼자 떨어졌다. 모바일 인터넷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PC방에서 인터넷으로 ‘인사동’을 검색하던 중 흥미로운 곳을 찾았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카페 귀천이었다.

귀천은 인사동 중심가에서 흔치 않았던 신식건물, 밖이 잘 보이지 않는 1층 한 구석에 있었다. 테이블은 고작 4~5개에 불과했다. 손님은 고작 한 팀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은 ‘천상병 시인 사모님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차를 내오던 목순옥 여사와 눈이 마주쳤다. “기자입니다”라는 얼떨떨한 소개에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건넸다.

   
▲ 2006년 인사동 카페 귀천에서 만난 목순옥 여사 / 사진=최상진 기자

천상병의 시와 목여사의 사랑과 동백림 사건의 뒷 이야기 등 물어볼 것은 많았다. 그러나 고작해봐야 ‘귀천’과 인터넷에서 급히 검색한 수박 겉핥기식 지식만 가진 갓 스무살이 넘은 청년은 쉽사리 이야기에 접근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뀌는건 순식간이었다. 결국 물 흐르듯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카페에 전화 한 통이 왔다. 5분쯤 흘렀을 때 목여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분쯤 흘렀을 때 그녀는 “감사하다. 다음에 꼭 한번 찾아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서해교전에 전사한 병사 아버지네요. 아들이 수양록 앞장에 ‘귀천’을 적어놨는데 다시 돌려보다 생각이 나 전화하셨대요”라며 “귀천이라는 시가 아직도 참 많은 사람들한테 힘이 되고 있나봐요”라고 웃어보였다. 눈앞에 있는 그녀가 수녀로 보였다.

회사로 돌아오는길 문득 ‘교과서에 실린 귀천을 본적 있느냐’는 질문에 “출판사 연락은 받았는데 본 적은 없다”는 목여사의 대답이 떠올랐다. 퇴근길 광화문 교보문고를 뒤져 교과서를 사다가 앞장에 “제대로 된 기자가 되면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퇴근길 다시 카페를 찾아 교과서를 선물했다. 그녀는 뛸 듯이 좋아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동백림사건의 피해자인 ‘이응노·윤이상·천상병 추모 문화제’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목여사는 두 손을 잡으며 “금방 이렇게 다시 만났네요”라고 말했다. 손님이 많아 길게 인사는 하지 못했다. 그저 “다음엔 공부를 많이 해서 찾아갈게요”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0년 군대에서 한창 더위와 씨름하던 시절, 인터넷을 통해 목여사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슬프기보다는 서운했다. 아직 그녀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직업기자가 되면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는 없었는지 서운했다.

   
▲ 2006년 인사동 카페 귀천 / 사진=최상진 기자

그래서였을까 직업기자가 된 이후 인사동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 인사동 부근으로 회사를 옮긴 올해서야 그때 귀천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이미 카페는 사라진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날씨는 추운데 그녀가 직접 담갔다는 모과차가 그리운데 정작 그녀는 없었다.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회사로 돌아오던 길 우연치 않게 수운회관에서 천상병 시인의 시화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죄인이 된 것 같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몇 시간을 고민한 끝에서야 무거워진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길 수 있었다.

경운동 수운회관 13층, 조심스럽게 찾은 유카리 화랑은 조그마했다. 과거 목여사의 찻집과 비교해도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창문으로 스미는 햇살이 천상병 시인의 웃음에 미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했다다. 10년 전 목 여사가 건넸던 모과차의 향기처럼.

전시 관계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며 23명의 미술작가 5명의 사진작가가 힘을 모아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전시회 기간도 당초 6일까지에서 17일까지 연장할 예정이다.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길, 시인 천상병과 평생 그를 보듬은 목순옥이 걸었을 인사동 거리를 오랜만에 다시 걸었다. 코끝 찡한 추위 사이 어딘가에서 전설로 남은 시인과 그의 아내가 소탈하게 웃으며 반겨줄 것만 같았다. 천상병의 해맑은 미소와 목순옥의 따뜻한 차 한잔이 무척이나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