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 등 허점에 책임회피 꼼수 가능성... 구체적 보완 필요성 지적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과도한 확대’라는 평가로 재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야당의원 및 전문가들도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확보의무가 구체화되며, 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이 강화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지난 1월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영향 분석 및 대응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전경련 제공
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의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의 범위 ▲안전보건확보의무의 구체적 내용 ▲안전보건교육 수강 및 과태료 부과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의 공표 등으로 이뤄졌다.

구체적으로는 중대산업재해를 급성으로 발생한 질병이면서, 인과관계 명확성과 사업주 등의 예방 가능성이 높은 질병으로 구체화했으며, 공중이용시설의 범위를 실내공기질 관리법의 다중이용시설 시설군을 대부분 적용시켰다.

이에 대해 재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같은날 “이번 시행령 제정안은 많은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경제계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경영책임자 등이 이행해야 할 의무 범위가 적정한 예산, 충실한 업무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법률에서 위임한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등 불명확한 점이 있어, 법을 준수하는데 기업들의 많은 애로가 예상된다”면서 “중대산업재해의 적용범위인 급성중독 등 직업상 질병과 관련, 중증도와 치료기간의 제한이 없어 경미한 부상도 중대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기업인들에 대한 과잉처벌이 될 수 있다”며 “산업안전은 경영책임자 뿐만 아니라 현장 종사자의 안전의무 준수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보다 많은 의견 수렴을 요구했다. 

노동계와 일부 야당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1일 입장문을 내고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정이 없어, 의무주체가 모호하다”면서 “의무 사항 역시 적정, 충실 등의 추상적 표현만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강은미 의원이 지난달 30일 광주시의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광주 학동 붕괴사고로 본 안전사회를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강은미 의원실 제공


또 강은미 국회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동계에서 요구해왔던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및 직업성 질병을 제외시켰다”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논 ‘누더기법안’”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행령 초안은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돼 있어, 중증 직업병 환자가 여럿 발생하더라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한,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고 힐난했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대표이사 정도로 처벌했는데, 이번 법에서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까지 범위를 넓힌 만큼, 본격적으로 법안이 시행되면 형사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 등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을 내놨다. 

이어 “중재재해처벌법을 살펴보면, 16개 조항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여기에 정의규정이나 단순한 규정을 제외하면, 실제 조항은 몇 개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 변호사는 “현재는 경영책임자의 정의 등 모호한 부분이 있어, 앞으로 시행령이 만들어지면서 좀 더 구체화되고, 지금처럼 노사 어느 쪽도 만족 못하는 법률이 아닌, 확실한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고 변호사는 “예전에 안전벨트 의무화가 처음 도입됐을 때, 다들 반발하고 안 매고 다녔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매는 것처럼, ‘안전을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한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실내주차장 및 업무시설, 오피스텔ㆍ주상복합, 전통시장은 제외시킴으로써, 소상공인 부담을 고려했다”면서 “이처럼 이번 법안이 기업 특성 등을 감안해 운용되도록, 세부 기준은 가이드라인 등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법안은 처벌보다 예방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아직 초안 상태”라며 “향후 각계 전문가들과의 의견수렴을 통해 미비한 부분은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12일부터 오는 8월 23일까지 40일간의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