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수출 위축 우려... 한국 적용 제외를 위한 정부 노력 촉구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유럽연합(EU)이 세계 처음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EU 집행위원회는 14일(현시지간), 탄소중립 정책인 'EU 그린딜' 12개 법안이 담긴 '피트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술라 폰 데르 레이엔(Ursula von der Leyen, 사진 왼쪽)이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원인 파울로 젠틸로니(Paolo Gentiloni) 옆에 앉아 EU의 새로운 기후정책 제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실행 방안을 골자로 한 ‘피트포55’에 포함된 탄소국경조정제도는 2026년부터 EU가 수입하는 철강, 시멘트, 화학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의 제품에 탄소배출량에 따라, 사실상 관세인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3년의 유예기간 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EU에 해당 품목을 수출하려면, EU가 정한 기준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경우엔 CBAM 인증서를 첨부해야 하며, 이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인해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이 쉽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철강과 시멘트가 각각 27%, 화학이 15%로 전체 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EU로 수출한 철강 제품은 15억 2300만 달러, 알루미늄은 1억 8600만 달러 등, 상당 부분이 CBAM의 대상이 된다.

특히 EU는 미국과 함께 전통적인 주요 수출 국가라는 측면과, 탄소다배출 제품군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부담은 결코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국경세도입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약 2.0%의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는 것과 같은, 연간 10억 6100만 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국내 탄소국경세 도입 시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포스코와 2위 현대제철의 탄소국경세 합계가 3조 7000억 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EU의 배출권거래제(ETS)에서 거래되는 탄소가격이 최근 50 달러 수준으로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탄소국경세는 2배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대 급부로 2030년 기준 탄소국경세로 EU가 벌어들일 수입은, EU의 배출권거래제(ETS)에서 거래되는 탄소가격 수준으로 계산할 때, 약 12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도 EU CBAM 대응에 나섰지만, 긍정적인 답을 얻어내진 못한 상황이다.

지난 5일 김정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EU 집행위원회 사빈 웨이안드(Sabine Weyand) 통상총국장에게 “CBAM이 국제무역에 대한 위장된 장벽 및 이중규제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면서 CBAM에서 한국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 문승욱 산업부장관이 6일 포시즌스호텔에서 프란스티머만스 EU 그린딜 수석부집행위원장과 만나, 탄소중립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사진=산업부


문승욱 산업부장관도 한국에 방한한 프란스 티머만스(Frans Timmermans)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과 만나, “한국과 같이 EU와 유사한 배출권거래제(ETS) 시행 국가에 대해서는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고 재차 의견을 피력했다.

뒤이어 박진규 산업부차관은 15일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한국철강협회, 포스코,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 및 알루미늄 기업 관계자가 화상으로 참석한 가운데, ‘EU CBAM 도입에 대한 민관합동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박 차관은 이 자리에서 “CBAM가 도입되더라도 민관이 합심해 철저히 대응해 나가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서 “탄소중립이 우리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업계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계는 수출감소 우려와 함께, CBAM에서 한국이 제외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CBAM은 결국 수출품목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는 것”이라면서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대한 탄소국경세 부과는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정부는 EU CBAM이 국제무역규범의 원칙을 해치지 않도록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관련국과의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국내에서 운영 중인 탄소저감제도를 근거로 CBAM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장기적으로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의 탄소배출이 감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술혁신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 강화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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