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 이미 민법으로 가능한데 별도 도입
취재활동 위축·언론사 내부 불신 '이전투구' 가능성 걷잡지 못해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다.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민주당은 조만간 소관 상임위인 국회 문체위에서 전체회의를 갖고 법 개정안을 단독처리한 후 오는 25일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킬 계획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기존 법으로도 제단할 수 있는 사안인데 형사처벌을 더 강화시켜 도입한다는 점이다.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는 기존 손배 법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강화시켜 내놓은 것이다.

특히 언론사의 '기자에 대한 구상권' 또한 민법으로 충분히 보장되는 내용인데 이를 명시해 기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기본적인 손배 책임을 언론사가 지도록 하고 있으나, 보도를 작성한 기자에게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음이 명백할 경우 해당 기자에게 언론사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보도를 작성한 기자가 편집국 데스크를 속였을 경우 해당 기자에게 언론사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 7월 27일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대해 한국신문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 거의 모든 언론 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은 비좁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 모습이다. /사진=미디어펜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이미 민법 제745조와 제756조에서 보장되어 있다.

실제로 제745조는 채무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제756조에 따르면 피용자(기자)가 제 3자에게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히면 사용자의 배상책임에 따라 사용자(언론사)가 이를 배상해준 후, 피용자(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 해당조항은 이미 지난 2014년 12월과 2021년 1월 일부개정되어 확립된 것으로, 지금까지 이의 없이 원활하게 지켜진 법이다.

이에 따라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기자들의 취재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사 내부에서 편집국 데스크와 기자들 간 불신이 커질 가능성도 상존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고의 또는 중과실 가능성을 갖고 기자의 펜을 꺾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보고 있다.

지방법원의 한 현직 부장판사는 4일 본보 취재에 "민법에서 이미 규정되어 있고 잘 돌아가는 걸 뜯어고치려는게 의아하다"며 "민주당의 현 행태는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욱이 기자에게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음이 명백할 경우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했는데, 이를 어떻게 입증하고 누가 입증 책임을 질 것인지에 따라 언론사 내부에서 불신과 다툼이 극심할 것"이라며 "법조항 하나 고쳐서 일거양득이다. 언론이 언론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부 분열을 조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언론의 자유, 취재의 자유는 법적으로 책임있는 자유여야 하지만 지금까지 수십년간 그 자유는 법적으로 잘 지켜져 왔다"며 "아무런 문제 없던 법조항에 메스를 들이대려는 여당의 의도가 불순해 보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지방청의 한 부장검사 또한 본보 취재에 "언론의 기사 편집과 표현을 일일이 사전 검열하던 독재정권 당시의 보도지침까지는 아니지만, 이번 개정안은 더 교묘하게 언론의 힘을 약화시키고 기자의 펜이 갖고 있는 정론직필 공정성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기업과 정치인에게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언론사와 기자가 손배 책임을 놓고 이전투구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또다른 문제는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 부담시키는 것인데, 이는 이례적일 뿐더러 '청구자가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의 기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중재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5단체는 즉각 헌법 소원을 낼 계획이다.

언론 5단체는 앞서 "민주당이 입법 권력을 이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저지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여론전에 들어간 민주당이 최종 판든을 어떻게 내릴지 주목된다. '언론개혁'이라고 포장하지만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여당 행태가 어떤 결말을 낳을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