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원전 24기서 2031년 18기, 2038년 14기 축소 강행 계획
블랙아웃 우려…석탄·LNG 이어 정비하던 원전 풀가동 불가피 시인
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의 눈물'이 이제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가 바꾸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다툼, 기회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과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 미디어펜은 '기후위기 리포트' 심층 기획시리즈를 통해 '신기후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짚어보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원전이 밀집된 고리 지역 반경 30㎞ 이내에는 340만명이 살고 있어, 만에 하나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다. 원전 추가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 부산 시민에게는 머리맡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하나를 놔두고 사는 것과 같다. 판도라(원전)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6년 12월18일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원전 재난영화인 '판도라'를 관람한 뒤 이같이 말했다. 2011년 쓰나미 충격으로 원전에서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한국인의 원전 공포를 배가한 터라 마케팅은 적중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영화 판도라 포스터 / 사진=청와대, 네이버 이미지


문 대통령은 이듬해 5월, 대선 10대 공약 중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 △자연재해와 사회재난으로부터 국민보호 △미세먼지 배출량 감축을 통한 국민 '호흡권' 보장 △탈(脫)원전 등 친환경 에너지 패러다임을 내걸고 대선에서 당선됐다.

원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전기를 다량 생산할 수 있는 발전수단으로 꼽힌다. 탄소 배출량도 미미해 친환경적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 등에서 늘 ‘세계 1위’로 꼽혀왔다. 

비교 우위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돼 향후 세계 600조원 규모의 원전시장을 선점할 거라는 기대도 늘 함께 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2017년 5월부터 'K-원전'의 경쟁력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판도라 상자, 실제 없앨 수 있나

국내 1호 원전인 '고리 1호기'는 대통령 당선 한 달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1978년에 상용화돼 사용연한이 오래된 게 문제라는 지적이었지만, 미국 기준을 적용하면 최소 20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탈원전 행보는 거침없었다. 가동 중인 원전들을 멈춰 세우는 한편, 신규로 조성한 원전의 완공을 미루거나 건설을 중단시켰다. 정부는 이러한 탈원전 정책으로 총 24기의 원전을 2031년 18기, 2038년 14기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현재 국내 원전은 24기 중 17기가 가동 중이고, 7기가 정비 중이다.

고리 1호기 이후 단두대에 오른 원전은 '월성 1호기'였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언급한 지 11개월이 지난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사회를 통해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감사원이 "정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며 검찰에 고발하자, 관련자들은 뒤늦게 증거 자료를 폐기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월성 1호기 가동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약 1조 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집 / 사진=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새롭게 조성되던 원전도 모조리 '퇴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4월 완공된 신한울 원전 1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의 위험에 노출됐다며 운영을 중단시켰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항공기가 해당 원전에 떨어질 확률이 1000만년에 한 번 있을 정도의 확률”이라고 설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뒤늦게 김부겸 국무총리가 올해 여름 전력수급난을 우려해 행동에 나서면서 원안위는 조건부로 운영을 허가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3‧4호기는 공사가 모조리 중단됐고, 원전 가동을 앞두고 있던 경북 영덕의 천지 1‧2호기와 강원 삼척‧대진 원전은 모두 사업을 철회한 상태다.

국내 원전사업이 대거 축소되면서 원자력 관련 학계와 국내 산업 생태계는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정시모집 입학 경쟁률은 2016년 5대 1, 2017년 4.67대 1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탈원전 정책 이후인 2018년 3.91대1, 2019년 3.63대1, 2020년 2.57대 1, 2021년 2.5대 1로 매년 하향화되면서 '비인기 학과'로 전락했다. 

   
▲ 정부가 가동 중단을 선언한 고리1호기. / 사진=연합뉴스 제공

관련 산업계는 일감 절벽으로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은 2016년 5조 5000억원에서 2019년 3조 9300억원으로 28.5% 감소했다. 

민간 원전업계의 맏형인 두산중공업은 매분기 수천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하다 올해 1분기가 돼서야 248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비용절감에 따른 결과로 보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명예퇴직, 유휴인력 휴업, 친환경 사업으로의 전환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조 단위의 영업이익을 올리던 한국전력도 탈원전 직격탄을 맞았다. 한전은 2017년 영업이익으로 4조 9532억원을 신고했지만, 이듬해 2080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2019년에는 적자가 1조 2765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일시적으로 4조 862억원 흑자 전환했지만 국제유가 등 연료비 급감과 내부 비용절감 등에 따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올해 2분기 한전이 1조 180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환경파괴…태양광·풍력 대안 맞나

최근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현 한수원 중앙연구원 시니어전문)이 내놓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공급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는 원전의 사업성이 신재생에너지를 압도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전 본부장은 △탈원전이 계속 추진될 경우(시나리오1‧원전 비중 13%) △현재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건설 중인 원전을 가동하는 경우(시나리오2‧원전 비중 35%) △원전 비중을 50%로 높이는 경우(시나리오3) 등 세 가지 시나리오로 설비투자 비용을 산출했다.

그 결과 2050년까지 시나리오1에서 1394조원(태양광 769조 4000억원‧에너지저장장치(ESS) 420조 2000억원), 시나리오2에서 941조원, 시나리오3에서 653조원이 들 것으로 각각 추정했다. 

시나리오1이 강행된다면 453조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2019년 현재 원전 비중은 25.9%로, 정부는 2030년까지 25%로 낮추겠다고 밝힌 상태다. 

운영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이 전 본부장은 2050년께 연간 발전비용으로 시나리오1 166조 6000억원, 시나리오2 137조원, 시나리오3 104조 1000억원이 각각 들 것으로 예측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운영비가 약 143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월5일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제공


설비투자 및 운영비 폭탄사례로 손꼽히는 곳은 전남 신안이다. 정부는 전남 신안에 8.2GW급의 해상풍력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했다. 한국형 신형 원전 6기 규모와 맞먹는다.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매체 기고에서 “신안의 해상풍력 대단지 건설에는 48조 5000억원이 들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에는 10조원이 필요하다. 송전탑 건설비용까지 더하면 원전 대비 신안의 해상풍력 생산단가는 10배 이상이 될 것이다”고 비판했다. 

전남 신안에 대한 입지평가와 경제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가 사업을 강행한다는 점에서 의도가 불순하다는 지적이다. 

환경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이후 5년간 태양광 발전을 위해 전국에서 약 307만그루의 나무가 벌목됐다. 태양광을 위한 벌목은 2016년 약 31만그루였지만, 이듬해 약 67만그루, 2018년 약 134만그루로 매년 2배씩 늘어났다.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 파헤친 산지 면적은 2015년부터 작년 5월까지 6065㏊에 달하며, 이 중 5014㏊가 현 정부에서 허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단위의 정부 보조금은 산림 파괴를 더욱 부추겼다. 원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돈을 들여 산림을 파괴하고 태양광을 설치한 것이다. 

   
▲ '제17회 국제그린에너지 엑스포' 내 전시된 국내 한 태양광발전소 모습(본 기사 장소와 무관). / 사진=미디어펜


역대급 무더위‧산업경기 회복, 석탄발전 풀가동 불가피

올해 여름은 역대급으로 더울 거라는 전망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상공이 뜨거운 공기로 둘러싸이는 '열돔현상'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문제는 전력수급난이다. 가정에서 에어컨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수출경기가 조금씩 회복하면서 산업계에서도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자칫 2011년 8월처럼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손발을 들었다. 정부는 시운전 중인 석탄발전기 고성하이 2호기와 LNG발전기 부산복합 4호기를 조기 투입하기로 했다. 석탄과 LNG는 원전보다 탄소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뒤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일 신월성 1호기, 신고리 4호기, 월성 3호기 등 원전 3기를 이달 순차적으로 재가동한다고 밝혔다. 모두 정비를 문제로 정부가 가동을 중단시킨 원전이었다. 

전문가들은 원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면서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만 날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해외 각국에서는 과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의 원전참사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과 탄소배출 등을 이유로 원전을 늘려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로 6%까지 줄어든 원전 비중을 2030년 20~22%로 높이는 걸 고려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2기의 신규 원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최근 신규 원전 13기를 새로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도 원전에 배팅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차세대 원자로 지원에 7년간 3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11개의 신규 원전을 건설 중인 중국은 앞으로 40기의 원전을 더 세워 2060년까지 원전 비중을 28%까지 높일 계획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