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개편, 투명성·책임성 강화 미흡

   
▲ 미디어펜 경제부 김재현 기자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KB금융 사태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 제도와 운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임영록 KB금융 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해 '경징계' 의견을 모았지만 최수현 전 금감원장은 원안인 '중징계'로 돌렸다. 그간 제재심의 결정을 단 한번도 뒤집은 사례가 없었던 만큼 결과는 충격이었다. 

금감원측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시비와 관련,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등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법행위로 간주했다. 흐트러진 금융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확실히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후 최 전 원장의 갈지자 행보를 비난하는 소리가 커졌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제재심의 결론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투명성 문제가 드러났다. 또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와 안정화를 책임져야 함에도 전결권을 쥐고 있던 최 전 원장이 제재심을 지나치게 끌어왔다는 점도 뭇매를 맞았다. 이로 인해 KB의 조속한 경영정상화는 차질을 빚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대상자들의  제재심이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금융권의 불안과 불만이 교차하면서 원망의 눈초리가 여의도를 향했다.

1년 후 금융당국은 제재심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하고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제재심을 자문기구가 아닌 제재 결정기구로 오해하기 쉽다는 판단에 따라 자문기구임을 규정에 명확하게 반영하고 제재심이 자문기구 성격에 맞게 운영되도록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제재심에 금융위 직원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데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막도록 발언권은 갖되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또한 6명으로 구성된 민간위원들의 과중한 심의부담을 줄이기 위해 2배수인 12명의 민간위원 풀(Pool)을 도입키로 했다. 대신 제재심에 실제 참여하는 위원은 민간위원 6명, 당연직 3명 등 총 9명으로 유지키로 했다. 제재심의 투명성을 위해 전체 위원 명단을 금감원 홈페이지에 공개하되 매 회의때 지명되는 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제재대상자의 권익보호 강화를 위해 위원 제척과 회피제도를 내실화했다.

일단 금융당국이 자발적으로 제재심의 문제점을 고쳤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재심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조치가 빈약하다. 제재심 민간위원들이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과 사전누설 위반에 대한 확실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KB사태에서 보듯 두달간 이어진 제재심에서 민간위원들이 KB 관계자와 만나 소통을 나눴다는 잡음이 일었다. 물론 소문일수 있겠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심각성이 크다. 재판장에 있는 배심원들이 피의자들을 만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전 누설을 막기 위해 참석자 제한, 관련 교육 강화, 안건 방식 변경 등의 방안을 제시했지만 오류가 발생한다면 다시 개선방안을 재수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 금융감독원은 KB사태 이후 제재심의위원회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하고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미디어펜
아무리 제재심이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라 해도 제재 번복이 지속적으로 발생된다면 예측 가능성이 결여될 수 있다. KB 사태와 같이 제재심 결정이 뒤집힐 경우 제재심의 존폐도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특히 제재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제재 대상자의 경우 중징계를 받게 되면 당장 옷을 벗어야 하고 금융회사 재취업도 불가능할 수 밖에 없어 제재심 운영을 준사법적 절차에 근거한 성격을 갖춰야 한다.

제재절차 외 시스템적인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 제재 주체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말한대로 금감원 제재심은 원장의 자문기구에 불과하다. 금융위 설치법과 금융기관 설립 근거법률에 따르면, 금융기관 검사와 제재에 관한 규정은 대략 중징계는 금감원장이 건의하고 금융위원회가 결정한다. 경징계는 금감원장이 결정토록 역할분담이 돼 있다. 최종적으로  중징계 여부는 금융위원회의 몫인 셈이다.

또한 일부 제재 사유나 기준 가운데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표현도 제재 결정에 있어 애매모호하다.

시행세칙 제45조, 제재 사유 중에는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거나 금융실서를 문란시킨 경우"의 문구가 포함돼 있다. 금융회사의 위법행위나 부당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어느정도 넓은 의미의 제재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은 일부 수긍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집행하는데는 한계가 드러난다.

금융당국도 이번 제재심 개편 내용이 미흡하다고 일부 공감하고 있다. 제재심의는 보다 권위있고 엄정한 제재 집행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의 금융시장은 저성장, 저금리, 저유가, 고령화 등 3저(低) 1고(高)의 파고에 맞닥드리고 있다.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제재 집행으로 경제적, 사회적 비용부담을 줄여야 하며 예측가능한 결정을 통해 금융시장 권위를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제재심이 되어야 한다.  제2의 KB 제재사태 속편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