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충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75세)이 야인으로 돌아간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수용한데 따른다. 후임 비서실장의 인선은 설 연휴 이후 이루어진다.

경제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목마른 국민은 청와대의 비서진의 콘트롤 타워인 후임 비서실장이 누가 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기춘 실장은 허태열 초대 비서실장의 짧은 6개월 봉직의 뒤를 이어 박근혜 정부의 2대 비서실장으로서 직무를 묵묵히 수행했다. 이때부터 애증은 교체했다. 아니 애정을 가진 자는 말이 없기에 증오와 질타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초대 비서실장으로 6개월을 보낸 허태열 전 실장에 후임으로 임명될 때부터 '당대의 최고의 검사'의 칭호는 온데 간데 없고 정치과 언론 등 당대 최고의 저격수들로부터 셀 수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김기춘 실장은 검사로 공직을 시작하여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3선 의원으로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거친 법조계 출신의 정치인이다. 김기춘 실장은 허태열 전 실장의 뒤를 이어 2013년 8월 비서실장에 취임한다. 김 실장은 2015년 2월에 이르기까지 1년 반의 기간 동안 청와대 인사와 살림을 꾸려나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4년 1월에는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인 상태에서도 김 실장은 평소와 다름 없이 청와대 비서진을 이끌며 박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을 둘러싼 언론의 사의설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건강 악화와 아들의 사고 등 일신상 사정을 이유로 김 실장의 사의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때마다 김 실장의 사의는 소문에 불과했다.

   
▲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방송 캡처 

2014년은 청와대 비서실을 둘러싸고 난국이 펼쳐졌던 한 해였다. 2014년 1월을 기점으로 해서 야당의 내각총사퇴 요구,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한 박심(朴心) 논란, 비리 후 원대복귀했던 청와대 행정관의 사후조치, 그리고 4월에 벌어진 세월호 침몰로 인해 청와대는 역대 유례가 없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은 세월호 사고를 맞아 구조상황 점검에 주력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 비상근무체제를 운용했으며,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세월호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2014년 4월부터 시작되었던 청와대 비상근무체제는 8개월 간 계속 유지되면서, 세월호 수습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다만 이러한 노력과 달리, 야당과 시민단체, 언론의 사의설 제기와 해임 주장이 연이어 빗발치게 된 것도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 때에도 김 실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에서 나오기도 했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의원은 2014년 6월 18일 “김기춘 실장이 박근혜 대통과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을 둘러싼 정치적 비판이 가장 거셌던 순간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된 ‘언론 루머’ 파동 시기였다. 결론은 언론의 근거 없는 찌라시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언론과 국민이 청와대 ‘문고리’라고 힐난하는 가운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검찰로부터 심도 있는 수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 18개월 간 김기춘 실장의 ‘공과’는 뚜렷하다는 평이 중론이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하여 청와대 인사 파동 등 다사다난했던 청와대의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업무 및 인사를 둘러싼 소통에 있어서 세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김기춘 실장은 일각에서 지적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쇄신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일부 언론의 과민한 반응과 여야 간의 첨예한 정쟁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소통하며 노력하는 자세를 많이 알리지 못했음은 김기춘 실장의 ‘과’다.

반면, 해외순방 등 대외 출타를 상대적으로 많이 수행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부재가 국민들에게 그리 크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김기춘 실장의 ‘공’이다. 이에 더해 청와대 비서진을 이끌고 세월호 사태 수습을 장기적으로 이끌었던 것 또한 또 하나의 ‘공’이다. 

김기춘, 그는 수많은 정적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욕망이 넘치는 정치판에서 최고의 권력자를 최측근에서 보필한 비서실장직은 말많고 탈많을 수 밖에 없다. 이 정부에 난무한 온갖 풍상을 한 몸으로 막으면서 그나마 경제살리기와 민생 안정을 위해 한 길을 걸어온 그의 공과는 후대 역사가가 평가할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소통과 화합, 지혜와 능력으로 채워진다면 그의 용퇴는 더욱 빛날 것이다. 역설의 몫은 그의 저격수에게 이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