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52) 비극적 운명의 오누이 상봉과 용서
에우리피데스(BC 484?~BC 406?)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부친 살해와 모친 살해 어느 죄가 더 무거울까? 비교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모두 끔찍한 인륜 파괴의 죄악이다. 그런데 기원전 13세기 말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 실제로 발생했다. 비극의 장소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골리스 지방이다. 미케네 왕국의 왕 아가멤논 가문에서 벌어진 친족 살해의 비극은 그리스인들에게 내내 가족 윤리관에 대한 숙고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친족 간에 벌어진 살인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모두 용서받지 못할 막중한 범죄행위였다. 그러나 그 죄악에 이르게 된 발단 배경과 과정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만큼 인간의 복잡한 도덕 감정과 사회적 규범이 얽혀 있다. 어느 편을 들어 쉽게 단죄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극적 연쇄 살인 사건은 이렇다.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는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의 성화에 못 이겨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 이에 원한을 품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정부(情夫)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서 개선한 남편 아가멤논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쫓겨난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는 성장한 후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Aigistos)를 죽여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이라는 정복욕과 공동체의 목표를 위해 자식을 신에게 바쳤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애틋한 딸 사랑에 대한 복수심과 권력을 빼앗으려는 욕망, 그리고 정부(情夫)를 지키기 위해 사심(邪心)으로 남편을 살해했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 살인자에 대한 복수와 왕권을 되찾기 위해 어머니와 사통(私通)한 자를 모두 죽인다.

살인죄를 범하는 죄인들은 각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사회적 대의명분 뒤에는 추악한 개인적 욕망 또한 공통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결국 이들의 죄악을 단죄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정의 질서와 사회적 질서 사이에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갈등하게 만든다.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질서와 규범 간에 빚어지는 충돌을 해소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이 뭐꼬?’라고 할 만큼 풀기 이 어려운 화두는 그리스인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비극이 시대의 산물이라면 이에 대한 해법 역시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바로 그리스인들에게 최고의 화두가 된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에 대한 또 다른 해석과 화해를 시도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피게네이아와 관련하여 두 편의 비극을 썼다. 다른 한 편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다. 트로이 전쟁을 떠나기에 앞서 그리스 연합군이 순풍과 안전한 항행을 기원하기 위해 아가멤논의 장녀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삼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은 암사슴을 대신 희생시키고 그녀를 타우로이족 나라의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데려가 자신의 사제로 봉사하게 한다.

두 번째 작품인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죽었으리라고 믿었던 이피게네이아와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극적으로 상봉하고 귀향하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는 먼 이국땅에서 늘 혈육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산다. 그러던 중 오레스테스가 아폴론의 명령에 의해 타우리케로 잠입했다가 붙잡혀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그녀의 신전으로 끌려오게 된다.​

   
▲ 이피게네이아가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에 살던 타우로이족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사제로 봉사하면서 고향 그리스의 아르고스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애잔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이피게네이아 II’, Anselm Feuerbach(1829~1880)의 1871년 작이다.
오레스테스가 타우리케로 오기까지 비극적 사연은 길다.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는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이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을 원한으로 품고 있었다. ​

마침내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남편 아가멤논이 귀향하자, 그녀의 정부(情婦) 아이기스토스와 모의하여 남편을 살해하고 왕권을 차지한다. 왕국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던 오레스테스(Orestes)가 장성하여 훗날 누이 엘렉트라(Electra)를 만난다. 두 남매는 공모하여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복수한다. 이 내용은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아가멤논> 3부작과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로 작품화된 바 있다.

   
▲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입성했던 미케네 왕성의 사자문, 아가멤논은 이 문을 통해 자신의 왕궁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던 중 왕비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도끼를 맞아 죽게 된다.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이 희생 제물로 바친 것에 원한을 품고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박경귀
오레스테스는 모친 살해라는 패륜을 정화 받아야 했다.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후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타우리케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져오기 위해 잠입했다 붙잡힌 것이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로서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희생 제물이 꿈에 그리던 자신의 남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제의 소명과 혈육의 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결국 사제이기에 앞서 그녀는 속세의 인연에 얽매이는 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혈육의 정에 끌려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타우리케의 왕을 속이는 계략을 쓴다. ​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된 가문의 친족 살해의 비극을 뒤늦게 알게 된다. 사실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가장 큰 사람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을 희생시킨 것에 원한을 품고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해 동정과 공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머니를 죽인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단죄할 명분은 충분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다시 동생 오레스테스를 죽인다면,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동생을 단죄하는 셈이 된다. 과연 이피게네이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에우리피데스가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피게네이아를 살아남은 것으로 상정한 이 작품을 쓴 이유는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의 고리를 단절시키기 위해서인 듯싶다. 그는 이피게네이아가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를 용서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피게네이아는 딸을 희생한 아가멤논의 죄악보다, 왕이자 가문의 수장인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의 죄악을 더 큰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은유하는 셈이다. 아니면 에우리피데스는 최소한 아가멤논 가문에 더 이상 친족 간 살해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가족 간에 화해하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차원에서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의 만남은 친족 살해에 대한 이피게네이아의 재단(裁斷)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극적인 상황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남매가 서로 친남매인 것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높이는 정교한 플롯이 압권이다. 이 대목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천재적 재능을 확인시켜 준다.

이피게네이아가 오레스테스의 신분을 확인해 나가는 대화 과정과, 이피게네이아가 오레스테스와 동반한 절친 퓔라데스를 통해 아르고스의 친가에 전달하고자 하는 서찰의 내용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밝혀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

서찰을 혹시 분실하거나 바닷물에 유실할 경우에 대비해 서찰의 내용을 말로 전해달라는 퓔라데스의 요청에 이피게네이아는 결국 이렇게 답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전하시오, “전에 아울리스에서 제물로 바쳐져, 그곳에서는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피게네이아가 살아서 이 서찰을 전한다.”

환희의 상봉을 만드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여기서부터 풀린다. 이 과정은 오뒷세우스가 천신만고 끝에 귀향하여 페널로페와 상봉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는 둘만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억을 문답을 주고받는다. 이 작품에서도 서로의 신분을 확실하게 ‘발견’해 나가는 기법이 유사하게 전개된다. 청중을 조바심 나게 하면서 극적인 기대감으로 긴장감을 높여가는 문학적 기교가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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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Iphigenia in Tauris)의 한 장면을 묘사한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이다. 오른쪽부터 이피게네이아,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 그의 친구 퓔라데스다. 이피게네이가 타우로이족의 나라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사제로 봉사하고 있을 때 상봉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WolfgangRieger
이피게네이아는 야만족의 나라에서 “이방인들을 죽여야 하는 여신을 위한 봉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가길 늘 희구했었다. 그러던 차에 동생 오레스테스를 만나 여러 가지 시험적 질문을 거쳐 친동생임을 ‘발견’하게 되고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이후 “집안이 쑥대밭”이 된 비극적 전말도 듣지만 결국 여동생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어머니 살인을 정당한 행위로 인정한다.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아버지 아가멤논의 죄도 있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자, 미케네 왕국의 왕이었던 아가멤논을 죽이고, 왕권을 정부(情婦) 아이기스토스에 넘겨준 어머니를 그녀 역시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의 가부장적 인식이 지배하던 시대적 배경을 느끼게 한다.

아무튼 이피게네이아는 타이로이족의 왕 토아스를 속여 배를 구해 세 사람이 함께 탈출한다. 모친을 살해한 오레스테스와 이들이 만져 더럽혀진 아르테미스 신상을 바닷물로 정화한 후에 오레스테스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며 이들과 신상을 빼돌린 것이다. ​

군사를 보내 이들을 쫓던 토아스 왕에게 아테나가 자신과 포세이돈이 가호하고 있으니 뒤쫓지 말라고 명령한다. 또 이피게네이아에게는 귀향한 후 아티케의 브라우론(Brauron)에서 아르테미스의 여사제가 될 것을 명한다. ​

이 작품은 아가멤논 가문의 딸의 희생, 남편 살해, 모친 살해 등 연이은 비극이 아테나와 아폴론의 정화를 통해 구원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치는 고결한 정신을 보여주었던 이피게네이아가 이번엔 다른 행태를 보인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피게네이아의 행태는 자신의 혈육을 살리고 자신이 그리던 고향으로 가기위해 거짓 계략을 꾸미는 모순된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인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이피게네이아가 자신의 동생을 어떻게 희생의 제단으로 데려갈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피게네이아가 어머니를 살해한 동생 오레스테스를 용서한 것이 당시 가부장적 관념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피게네이아는 아무리 어머니가 지은 죄가 크다고 하더라고 아들이 어떻게 어머니를 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고통스럽게 번민하거나, 동생 오레스테스를 책망했어야 하지 않을까. 에우리피데스는 오레스테스의 모친 살해의 죄악의 막중함에 대해서도 그리스인들에게 심각한 경고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가멤논 가문의 파멸적인 죄악의 고리를 끊어 버리려는 이피게네이아의 고결한 선택일 수도 있다. 가족 간의 화해를 통해 사회적 단죄의 시선도 해소하려던 화해의 손짓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테나 여신이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의 탈출을 합리화 시켜주는 것도 오레스테스의 정화(淨化)를 재차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2 》,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1, 2쇄). 7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