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들어올 버스 25일 새벽에야…외교관들, 밤새 긴장
결행 전 딸에게 카불행 못 알려…“난 아이들이 다 커서” 결연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우리정부를 도운 아프가니스탄 협력자 390명을 한국으로 구출한 ‘미라클 작전’의 성공엔 ‘버스 모델’이 주효했다. 당초 협력자들이 자력으로 공항에 진입하면 우리정부는 민항기를 이용해 이들을 국내로 이송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불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됐고, 우방국과의 긴밀한 회의 끝에 버스 6대 동원이 결정됐다. 집결지에 모여있는 아프간인들을 버스에 태워서 카불공항으로 데려오면 우리공군 수송기 3대가 이들을 이송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작전은 시작됐지만 카불공항으로 향하던 버스를 탈레반이 막아서면서 15시간 가까운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미국측의 협력으로 섭외된 버스 6대에 나눠탄 아프간인 364명은 카불공항에 다다르기 전에 탈레반에 제지당했고 14시간 이상 버스에 갇혔다. 일부는 버스 안에 들이닥친 탈레반에게 폭행도 당했다. 364명 중엔 신생아 3명을 포함해 5세 미만 영유아가 100명이나 있었는데 이들은 에어컨도 안 나오는 깜깜한 버스 안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당초 탈레반과 미국측이 약속한 24일 오후 3시 30분을 넘기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난다음날인 25일 동틀 무렵에서야 탈레반은 버스를 놓아줬다. 드디어 협력자들을 태운 버스 6대가 카불공항 정문을 들어섰고, 이들을 기다리느라 공항에서 똑같이 밤을 꼬박 새운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은 버스에서 내린 아프간 동료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번 미라클 작전이 성공하면서 김 참사관이 카불공항에서 만난 협력자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사진은 화제가 됐다. 이 순간과 관련해 김 참사관은 27일 언론과 가진 화상 브리핑에서 “사색이 돼서 내려오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당시에 대해 “지금 카불공항엔 비행기가 뜨고 내릴 뿐 상점은 다 문을 닫아 물도, 식사도 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한국 외교관과 한국대사관 경호팀장이 한국행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2021.8.26./사진=외교부

버스 이동을 제지하면서 탈레반은 탑승자들의 여행증명서가 사본이어서 안된다고 구실을 댔다고 한다. 자칫 버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있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던 김 참사관이 ‘여행증명서 원본을 갖고 카불공항 정문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탈레반은 ‘나올 것까진 없다’며 버스를 출발시켰다.

‘미라클 작전’의 성공은 우방국의 협조뿐 아니라 우리외교관이 아프간인 대표에게 연락하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순차적으로 연락이 닿아 364명 모두를 완벽하게 집결시키는 소위 피라미드 식 비상연락망이 효과를 더했다. 무엇보다 아프간 현지에서 7~8년간 동료로 일하면서 쌓았던 ‘신뢰’가 이들을 연결시켰다. 김 참사관은 작전이 성공한 것에 대해 “우리가 선진국이 됐구나 생각했다. 그게 제일 기쁘다”며 소회를 밝혔다.

지금까지 세계는 20년만에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간에서 자국민은 물론 협력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8월 20일 기준으로 1만5000~1만7000명 정도 이송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미국이 탈레반과 약속한 철수 완료 시한인 이달 31일이 다가오면서 하루에 2000명까지도 이송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 밖에 8월 첫주 현재 영국은 1700명, 독일은 700명 이상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한편, 일본은 아프간에서 자국민과 협력자 등 500여명을 대피시키는 작전에 나섰지만 교도통신 통신원 1명만 이송시킨 것으로 28일 전해졌다. 일본은 이번 작전에 자위대 수송기 3대와 정부 전용기 1대를 투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정부에 도움을 줬던 아프간 협력자는 단 한명도 대피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24일 카불 공항에서 재회한 대사관 현지 직원을 포옹하고 있다. 2021.8.24./사진=외교부

한국정부가 분쟁지역의 외국인을 대규모로 이송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로 이송된 아프간 협력자들은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코이카,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 등에서 근무한 사람들로 앞으로 현지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탈레반은 '통역 등 서방국가를 위해 일한 모든 이들을 사면할 것이다. 어떠한 보복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신에 따르면 곳곳에서 조력자에 대한 처형과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제2의 흥남철수’로도 불리는 ‘미라클 작전’은 한국정부의 사상초유 외국인 구출작전 성공 사례로 우리 외교사에 남게 됐다. 특히 지난 2007년 7월 탈레반에 피랍됐던 샘물교회 교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당시 정부가 거액의 금전적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아프간에서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런 성공은 당연히 외교관 개인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 참사관은 27일 인터뷰에서 이번 작전 투입에 대해 “가족들은 몰랐다. 어제 돌아와서 딸들과 통화했다”며 “‘아빠 카불 갔다왔냐’고 따지더라”고 했다. 그는 카불에서 한차례 빠져나올 당시 ‘반드시 돌아와서 구출하겠다’고 협력자들과 약속했고, 다시 들어가던 순간에 대해 “이게 된다 안된다 생각 안해본 것 같다”고 회상했다.

미라클 작전이 성공한 뒤 사흘만에 IS의 자살테러가 났던 카불공항 인근 애비게이트에서 ‘KOREA'가 적힌 종이를 들고 먼저 도보로 카불공항에 입성한 26명을 구출한 주 아프가니스탄대사관 경호단장은 당시 작전을 위해 카불로 다시 들어가면서 “난 아이들이 다 커서 괜찮다”며 결연함을 보였다고 김 참사관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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