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감축 등은 정치권과 결탁 이해관계 얽혀 부실대학 연명시키기

   
김정호 사학포럼 대표/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대학구조개혁은 필요하다. 대학이 당면한 여러 가지 환경변화에 적응하여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근간의 대학구조개혁 논의는 학생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 대학은 그것 말고도 수많은 다른 변화들에 직면해 있다.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선호도가 변했으며, 학생들의 학교 선택 범위도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향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자국 대학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대학들을 선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구조개혁을 통해서 이 같은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는 대학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은 오히려 세상의 짐이 될 것이다.

대학의 구조개혁이 잘 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학생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구조개혁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 학생이 원하는 대학, 학생이 원하는 전공은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다. 학생이 선택하지 않는 대학과 전공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대학의 설립이나 해산, 정원의 증설이나 감축 등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환경변화에 따른 대학의 적응, 즉 구조개혁을 지연시켜서 학생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학문의 발전을 막는다.

   
▲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뉴시스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국내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가 대학특성화 사업 자금 등을 배정함에 있어 정원 감축율을 반영하기 때문에 대학의 질과 관계없이 모든 대학들이 어쩔 수 없이 정원 감축에 나서고 있다. 이는 대학의 진정한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잘못된 정책이다.

대학 교육의 질을 생각한다면 부실대학 순으로 퇴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더 많은 학생들이 우수한 대학에 다닐 수 있다. 그리고 교육당국이 관여하지 않으면 그런 상태는 저절로 달성될 것이다. 학생들은 우수한 대학순으로 선택을 할 것이고 부실대학은 학생을 충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대학의 정원을 줄인다는 것은 우수한 대학의 정원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수대학들은 수용능력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받지 못하게 되고, 학생들은 우수대학의 빈자리를 놔둔 채 부실대학으로 가야만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그 결과 퇴출되어 마땅한 부실대학들이 학생들을 수용해서 부실한 교육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대학 구조개혁정책은 이름만 구조개혁일 뿐 그 실질은 부실대학의 연명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교육부가 정원감축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실대학이라고는 하지만 그 대학이 소재하는 지역에서는 대학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대학들의 대학의 설립자 가문 구성원들과 총장, 교수들은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일 것이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여러 가지 루트로 압력을 가하고 있을 것이니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 지방의회 의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법안 통과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의 협조가 필요한 공무원들도 당연히 슬그머니 그들의 편을 들게 된 것이다. 또 그렇게 하다 보면 교육부의 고위공무원들에게 지방대학 총장 자리도 더 생겨날 수 있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작금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은 대학 교육의 높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부실대학의 연명해주기 위한 정치적 결탁의 결과일 뿐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정책은 학생을 일종의 배급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나온 소치이다. 교육정책의 목적을 학생들의 유익에 둔다면 학생들의 선택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당국이 할 일은 학생들의 선택을 방해하고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더욱 합리적이고 현명해지도록 좋은 대학과 부실대학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원감축 정책은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학생들의 선택을 방해한다. 교육의 질도 높고, 수용 능력도 충분한 좋은 대학들의 법적 정원을 억지로 줄여서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부실대학에 갈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다. 교육부의 관료들과 이 정책을 추동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학생들을 부실대학 연명을 위한 재료로 여기지 말라.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당신들의 개별적 이해관계에서 떠날 것을 촉구한다.

   
▲ 정시2차모집이 본격화 되면서 취업중심의 교육기관인 전문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현대전문학교 전경 모습. 

가장 좋은 대학교육 정책은 교육부가 대학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특히 사립대학에서는 손을 떼는 것이 옳다. 중앙대학교 이성호 교수가 일갈한 것처럼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대학교수보다 지식이 더 많은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길 한가? 대학 내에서 폭력배나 내란음모자들을 길러내지 않는 한, 또 대학운영자가 공금을 떼어먹지 않는 한 대학은 자유여야 한다.

교수가 어떤 내용을 가르치든, 학생이 무슨 내용을 배우든, 가리치고 배우는 방법이 무엇이든, 등록금을 어느 수준으로 받든, 제3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 같은 자유 속에서 대학들은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고, 학생들은 다양한 사립대학들 중에서 자신의 취향과 처지에 맞는 곳을 선택 하면 된다.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등록금을 규제하는 데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가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학생들도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비싸다면 국공립대학으로 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정치의 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그 결과 사립대학조차 등록금 규제를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대학이 연명하자면 국가의 재정지원이 불가피해진다.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재정지원의 성격이다. 사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헌법 제23조 3항이 규정하는 바, 국민(사학)의 재산권을 제한한 데에 대한 보상이라고 봐야 한다. 사학에 대한 국가나 교육부의 시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사학의 등록금이 자율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받는 재정지원금이라면 정부의 정책목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립학교에 대한 등록금 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재정지원을 받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학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은 ‘지원’이라기보다 대학이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보상으로 봐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꼬리표를 달지 말아야 한다. 그 재정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하든 사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부의 정책목표는 국공립대학을 통해서 펼치는 것이 옳다. 사립대학에 대해서까지 특성화 사업이니 정원감축이니 하면서 교육부의 정책목표를 강요하는 것은 사학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일이다.

   
▲ 사립대학, 사학은 본질적으로 국공립대학과 다르다. 사립대학에게 교육부의 정책목표를 강요하는 것은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다. 사진은 국공립대학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의 구조개혁을 위해서 교육부나 정치권이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구조개혁의 장벽을 제고하는 일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이 해산할 때 잔여재산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정관이 지정한 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우선이나 우리나라 모든 사립대학의 정관은 해산 시 잔여재산 귀속자를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뜻하는 바는 대학이 해산할 경우 대학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설립자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됨을 뜻한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면 해산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에서도 대학 경영자는 대학의 재산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어떻게든 연명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대학 해산을 결정할 경우 채무를 정리하고 남은 잔여재산은 설립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그 재산이 국가의 재정지원금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설립 시에 출연된 재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등학교 이하의 사립학교가 해산할 경우 기본재산 평가액의 30%까지를 ‘해산장려금’으로 지급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대학 해산의 경우에도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해산장려금’이라는 이름은 잘못되었다. 국가가 사학의 해산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학이 어쩔 수 없이 해산을 하게 되어 설립자가 자신의 재산을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름도 해산장려금이 아니라 ‘설립자 기여분’ 같은 이름이 더 헌법의 정신에 부합한다. 해산 시 설립자가 ‘설립자 기여분’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면 부실 사립대학의 해산은 큰 저항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여년 간 대학설립 붐을 거치면서 부실대학들이 양산되었다. 제대로 고등교육도 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의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존재들이 많아진 것은 대학생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이 부실 대학이 퇴출될 좋은 기회인데 정작 그 과정을 촉진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부실대학의 연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교육부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 구조개혁을 막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폐기하라. 인위적 정원감축 정책을 폐기하고 부실대학부터 퇴출되게 하라. 그것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 한국의 젊은이를 세계적 인재로 키워내는 길이다. /김정호 사학포럼 대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과 사학포럼이 공동개최한 '대학교육의 질적 혁신을 위한 올바른 대학 개혁의 방향' 정책토론회에서 김정호 사학포럼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