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규제 혁파 시급…학생선발권은 대학에, 학교선택권은 학생에게

‘고등교육’에 대한 ‘고등규제’ 혁파해야 대학교육에 미래있다

   
▲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1. 한때는 자랑거리였던 한국의 교육, 곪을 대로 곪았다

한국은 교육-특히 대학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한다. 사농공상의 오랜 유교전통의 탓도 있겠지만, 식민지와 해방, 6.25 전쟁까지 겪는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중요해졌다. 부모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야 부모된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자녀들도 대학은 무조건 들어가고 봐야 자신의 도리를 한 것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한국의 대학진학률을 세계 제일로 만들었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세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식민지를 벗어난 이후 그토록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으로 경제규모 10위권의 국가가 된 것은 맹목적인 신뢰에 가까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랑거리였던 한국의 교육이 휘청거리고 있다. 초중등교육은 물론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곪고 있다. 대학은 이제 가문의 영광이 아닌 가문의 멍에가 되었다. 남들도 가니 가기는 가야겠는데 들이는 돈에 비해 얻어 나오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비생산적인 곳이 되어 버렸다. 그 뿐인가. 아르바이트에 학자금 융자까지 받고 졸업장을 따도 취업이 되지 않으니 지난 시간과 불어난 빚에 대한 허탈감이 사회를 향한 분노로 이어진다.

교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욕을 갖고 강단에 서도 학문 자체보다 취업에 몰두해야 하는 제자들의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어느 선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할지 망설이다 보면 어느 쪽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학기가 지나간다. 업적평가도 발목을 잡는다. 해외 유명저널에 몇 편의 논문을 실었는가로 획일적인 평가를 하다보니 연구를 위한 연구에 메달리기 일쑤다. 같은 강의실에서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대학의 질은 하루가 다르게 낮아진다.

   
▲ 박근혜대통령이 1월 22일 청와대에서 국민행복을 주제로 교육·문화체육관광·보건복지·고용노동·환경·여성가족부 등 6개 부처로부터 신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2. 교육정책, 정치논리가 판치다 - 덩치만 커지고 내실 부족한 대학

고등교육은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했다. 우리나라 대학생 수 급증은 전두환 정부의 졸업정원제 시행부터다. 1980년 발표된 7·30교육개혁안에 담긴 졸업정원제는 선발시에는 대학졸업정원의 30%, 전문대학은 졸업정원 15%를 더 뽑고 이후 학사관리를 통해 학생을 탈락시키도록 하는 것으로 대학정원 7만명 증가효과를 가져왔다.

이후 폭발적인 증가는 김영삼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발표한 5·31교육개혁안을 토대로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를 고등교육정책의 핵심사항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1995년 131개교이던 4년제 대학이 2005년에는 173개로 증가했고, 전문대학도 같은 기간 145개교에서 158개로 각각 증가했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1990년 158만명이던 대학생 수는 1995년 221만명을 거쳐 2000에는 313만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대학정원을 감축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조치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8.31 대학구조개혁방안을 발표하고 대학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들고 대학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구체적으로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을 실시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16개 대학에 978억원을 지원하고 7,440명을 감축했다(이 중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은 5,556명).

이명박 정부는 고등교육정책의 규제완화와 부실대학 퇴출정책을 시행했다. 대학평가를 통해 단계별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학자금대출제한대학,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하고 부실이 지속되거나 별도로 중대 부정비리가 있는 대학은 퇴출시켰다. 그 결과 약 3,000명의 입학정원이 감소했다.

이런 감축기조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부실대학을 퇴출시키고 입학정원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박근혜 정부는 선별적이 아닌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감축시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대학과 대학정원의 수에 대한 정책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은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정치논리가 단연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학생수의 증가와 감소에 있어 최우선 고려대상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추이, 산업변동과 인적자원의 배분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부의 졸업정원제는 학내 인프라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대규모 정원을 늘려놓아 민심달래기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는 문민정부가 비로소 달성했다고 자부하는 민주화의 대학버전이라 볼 만하다. 자율에 대한 강조는 있었으나 권한에 따른 책임을 묻는데 미흡했거나 그 반대로 표면적으로만 자율에 그칠 뿐 정부의 영향력은 여전한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정부는 ‘경쟁력 강화’카드를 내밀었지만 기본적으로 정권이 신봉하는 평등지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정원감축을 정부지원과 연결시키면서 결국 학생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대학들의 입학정원이 줄어든 결과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하에 수도권 소재 대학에 대한 정부규제를 지속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경쟁력 강화화는 한참 모순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여론장악력을 지닌 좌파의 정치공세에 발목이 잡혔다. 교육정책마다 귀족, 특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공세를 강화하는 전선에서 밀리는 사이 자율성에 기반을 둔 대학정책들이 논의단계에 그치거나 실행단계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현 정부인 박근혜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은 현 박근혜 정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각 정권이 여러 가치들로 포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가장 민감한 교육현안인 입시와 관련된 대학정원 문제를 두고 풀었다, 죄었다하는 정부주도의 계획과 통제는 곳곳에서 비춰진다.

이렇게 정치적 셈법들 사이를 대학이 오가는 동안 한국의 대학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문제의 시작은 마땅히 짚어야 할 문제를 짚지 않는데 있다. 대학교육의 본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앞으로 필요한 인재상은 어떠한 사람인가. 향후 필요하게 될 학문과 그렇지 않은 학문은 무엇인가. 대학을 통해 초중고 교육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금과 규제권한, 당근과 채찍을 손에 쥐고 대학교육을 흔드는 정부만 문제가 아니다. 정책이 나오면 당장의 유불리를 따져 적당히 저항하다가 주고받을 지점을 절충하는 대학의 모습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원하는 통계치 달성을 위해 알아서 움직이는 현실적 타협은 고육지책이라 하기엔 너무도 오래 반복되어 왔다.

지금 한국의 대학교육의 현실은 무엇 때문에 ‘고등’교육기관이란 이름을 붙이는가라고 되묻게 한다. 교육을 관장하는 수장이 부총리라고 교육의 위상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님을 목도했듯 고등교육은 적어도 인류차원은 못되더라도 한 나라의 장래를 지탱할 자원들은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간과한 대학정책과 대학교육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세계 교육시장의 변방, 열기만 뜨겁고 내실은 초라한 우리들끼리의 리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2014 자유경제원 교육대토론회- 흔들리는 교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의 전경 

3. 평등주의 맹종 속 대학교육 추락은 당연한 귀결

한국사회에서 교육만큼 평등주의가 깊이 파고든 분야도 없다. 교육의 사회적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평등주의는 더 쉽게 파고든다. 평등한 것이 곧 정의롭고 성공한 교육이 된다.

교육에 있어 평등이 강조되면 당연한 결과는 교육과정에 정부개입의 증가다. 교육서비스를 정부가 직접제공하거나, 교육의 내용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간, 심지어 능력과 무관하게 동질성을 유지하도록 정부가 지원·육성하고 관리·감독해야한다는 논리다.

친전교조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지난 해 이후 초중등교육의 방향은 일찌감치 이 길을 향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고 교육수요자가 전액 부담하고, 수준별 교육을 제공하여 학업성취도도 높아 인기를 모으는 자사고는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몰려 폐지사태를 맞았다.

반면 좌파교육감의 교육철학을 따르는 혁신학교에는 많게는 1억여원 씩의 지원금을 제공하며 육성한다고 한다.

스스로 설 수 있는 학교는 주저앉히고 엉뚱한 곳에 세금 물줄기를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교육시장을 광역단체정도의 울타리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편협성에서 나온다. 세계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경쟁상대로 삼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의무교육의 범주도 아닌 대학교육에서도 이런 평등주의는 깊이 뿌리박혀 있다. 사회적으로 실력에 따라 엄연하게 드러난 대학서열은 결코 드러내서도 아는 척해서도 안되는 공지된 비밀이다. 다른 대학과 차별성을 꾀하려 했다간 당장 제재가 따른다. 각종 정부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해야 하니 잠자코 있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 된다.

이런 대학교육은 결국 획일적이고 질낮은 교육으로 흐르게 된다. 이런 인식 끝에는 ‘수도권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서 지방대학이 고사하니 수도권 대학을 규제하자’, ‘상위권 대학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정원축소도 이들 대학부터 하자’는 식의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뒤쳐진 것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아닌 앞서 나가는 것의 뒷덜미를 잡아 앉히는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고등학교때도 전전하던 학원을 대학교에서도 돌아다니고 그도 아니면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현실은 평등주의가 대학에 똬리를 튼 결과다.

   
▲ 역대 정권별 사교육비 추이 

4. 길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대학과 학생들이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풀고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가 더 바삐,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가. 이것이야 말로 하책 중의 하책이다.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길이다. 답은 정부가 아니라 대학과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울지만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학교에는 학생선발권을 학생에게는 학교선택권을 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최고의 상책이다.

그러나 이 길은 대학을 둘러싼 각종 규제로 막혀 있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물샐 틈이 없다. 대학재정·회계, 대학 및 법인운영, 대학정원/선발(입시), 학사운영, 교육여건/시설, 교직원, 국제화, 산학협력 등 대학 전반에 걸쳐 거미줄처럼 촘촘한 규제는 ‘고등교육’에 걸맞는 ‘고등 규제’를 실감케 한다. 국립의 경우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립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을 뽑고, 가르치고, 평가하는 모든 과정 전부 정부가 세운 기준과 통제 하에 진행되다 보니 학풍은 말할 것도 없고 사학별 특성과 경쟁력도 온데간데없다. 우리나라에서 사학의 자율성은 죽은 용어일 뿐 현실의 용어가 아니다.

대학 재정의 핵심인 등록금도 상한제에 발이 묶여 있다. 매우 강력한 가격규제다. 대학에서는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해도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 학생들도 학원으로, 해외로 돌아다니기보다 비용을 더 지불하고 양질의 교육을 대학 내에서 소비하고 싶어도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대학등록금을 풀어주면 등록금이 치솟아 학생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가 등록금 상한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다. 민심이반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은 학생들의 학교 선택에 매우 중요한 결정요인이다. 가뜩이나 학령인구도 감소하는데 좋은 교육을 보다 싼 등록금을 받고도 제공하기 위한 경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결국 가격은 시장에서 공급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곳에 형성되게 되어 있지 않은가.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한 재원을 정부지원으로 메꿀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정부가 세금으로 선심을 쓰면서 민간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는 처사다. 현실이 이러면 대학들은 온갖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대학도, 학생도 모두 피해자가 된다. 결국 현재 구도에서 웃는 자는 정치인, 교육관료들 뿐이다.

공급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니 학생들도 수학능력시험 점수별 줄서기로 대학과 학과를 정해 들어간다. 이런 것을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을 골라도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소비자 선택권을 무력화 시키는 것도 없다. 이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교육의 질에 만족을 느낀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와 교수진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 싹트기 어렵다. 또 다른 관문을 향해 잠시 거쳐 가는 값비싼 절차일 뿐이다.

비단 학교의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사회의 대학이 입학성적에 따른 차별성 외에 특장점을 보유하지 못하다 보니 대학에 대한 일종의 팬덤(?)이 형성이 안 되어 있다. 한국의 대학의 초라한 기부금 수입을 보자. 참고로 2014년 미국 하버드대의 기부금은 1조2600억원이었다. 뒤를 이은 스탠퍼드대의 기부금 액수도 1조58억 규모다. 모두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 모금액을 모두 합한 5천억원 수준보다 월등히 높다. 이 격차는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자 교육철학과 영혼이 부재한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팬(기부자)들의 외면의 결과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5. 교육규제 혁파가 대학교육 혁신의 열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3월 규제혁파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하고 규제 단두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후 박근혜 정부의 행보에 촉각을 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한 참 못 미쳤다. 우선 규제혁파의 철학이 어디에 있는가하는 의구심이다.

규제혁파의 중심은 정부의 불필요한 통제나 간섭으로부터 민간의 자율성을 회복시키는데 두어야 한다. 민간의 자유로운 경쟁은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증가시키고 그만큼의 이윤을 공급자에게 돌려준다. 정부의 재정지원도 필요 없고 그에 따른 감시와 통제도 줄어드니 재원이 이중 삼중으로 절약되게 된다. 모든 분야의 규제혁신의 대원칙은 여기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규제혁신에서는 이런 대원칙은 부재하고 단순 민원성 규제의 해소에만 급급해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교육 분야의 규제도 이런 맥락에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이를 통해 미래세대의 중추가 될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학별로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의 자율성을 천명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민원해소성 규제개혁을 넘어선 전면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어디서도 전면전을 알리는 포성이 들리지 않는다. 입시규제인 3불에 대한 논의도, 가격규제인 등록금 산정에 대한 논의도, 대학평가결과 부실대학이 우수수 정리된다는 이야기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수단인 지원금 제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수술하겠다는 이야기도 물론 없다. 규제혁파에서 교육분야는 제외란 말인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은 부실대학 퇴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학교와 교직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생이 존재하는 비정상이야 말로 정상화되어야 할 일순위다.

이 역시 쉽지 않다. 형평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대학별 일괄정원감축, 지역균형발전 논리에 입각한 정치적 살생부 작성 등 정치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육혁신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상정하는 교육환경의 급변이다. 마냥 다음의 기회를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기술의 발전으로 대학강단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중요치 않게 되었다. 맘만 먹으면 해외 유명대학의 석학의 강의도 얼마든지 심지어 무료로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지역 간 균형과 같은 좁은 시야, 좁은 땅덩어리내의 규제와 탈출에서 헤맬 때 세계라는 무대는 이미 우리 삶속에 들어와 있다. 정부가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고 싶은 대학이 불과 몇십년 내에 세계 교육무대의 허깨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절박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규제혁파를 하고 세계 교육의 성공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이야 말로 규제가 필요한 특수영역이 아니라 규제가 필요 없는 특수영역이다. 대학들도 더 이상 개별대학의 유불리, 이해득실을 따지는 몇몇 정책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본질적인 부분을 놓고 정부와 대화해야한다. 그것이 대학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다. 상아탑에서 이런 본질을 외면하고 변죽만 울린다면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정부도 대학도 각자의 본분대로! 결국 back to the basic 해야 한다.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과 사학포럼이 공동개최한 '대학교육의 질적 혁신을 위한 올바른 대학 개혁의 방향' 정책토론회에서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이 발표한 주제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