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부작이니 아직 10%도 채 지나지 않아서일까,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풍문으로 들었소’의 시작점은 마치 블랙은 있는데 코미디는 실종된 느낌이었다.

‘펀치’ 후속으로 이번주 첫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위 0.1%의 법률가 집안에 평범한 고등학생이 만삭의 몸으로 입성해 출산하는 과정까지 빠르게 전개됐다.

   
▲ SBS '풍문으로 들었소' 캡처

부모님 바람대로 착실하게 공부해 서울대 법대까지 합격한 한인상(이준)은 한 번의 사랑으로 서봄(고아성)을 임신시키고 말았다.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녀를 한참 뒤에 찾아낸 한인상은 이미 만삭이 된 서봄의 모습을 보고 책임지겠다며 집으로 데려왔다.

예상대로 집안은 난리가 났다. 벌써부터 고등학생 아들의 사법고시 합격과 이후 혼사를 놓고 저울질하던 한정호(유준상)과 최연희(유호정)은 만삭의 서봄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이 충격으로 서봄의 출산이 임박해지자 최연희는 엉겹결에 자신의 방까지 내주며 출산을 도왔다. 물론 모든 일은 비밀리에 부쳐졌다.

다음날 바로 한인상은 아버지가 마련해 둔 공부방으로 옮겨졌다. 서봄과 아이는 친자확인이 끝날 때까지 저택에 머물게 됐다. 집안 복도에서 최연희와 마주친 서봄은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으면 안되냐. 혹시 벌 주시는 거냐” 물었고 최연희는 “무슨 소리냐. 우리가 뭐냐고 벌을 주냐. 우리는 편견 없다”고 달랬다.

그러나 서봄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이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 이냐. 넌 수치심도 없느냐. 이런 뻔뻔하고 천박한 계집애”라며 앙금을 쏟아내고 말했다. 자존심 상하는 말에도 불구하고 서봄은 “수치심은 제가 감당할 수 있어요”라며 본격적인 신경전을 예고했다.

   
▲ SBS '풍문으로 들었소' 캡처

이날 방송은 빠른 전개가 돋보였다. 초반인 만큼 인물과 배경 설명에 주를 뒀고, 무엇보다 한인상과 서봄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주안점을 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인물들의 캐릭터도 살짝 드러났다.

그러나 사실상 ‘블랙코미디’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크지 않았다. 상위 0.1%의 집안에 평범한 집 여고생이 아이와 함께 들어간다는 설정이 향후 웃음을 유발하기보다는 주인공의 시련을 통한 갈등과 해결에 초점을 맞춰 전개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스럽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신데렐라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유리구두 대신 아이를 품은 서민 아가씨가 귀족 시부모의 편견을 이겨내고 사랑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이유는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PD가 보여준 환상적인 호흡 덕분이다. 이들의 전작 ‘밀회’는 불륜을 소재로 다뤘으나 단순 치정극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 면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 바 있다. 소재에 집착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내는 기술로 승부를 걸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승부수는 양가의 너무 다른 생활방식에서 오는 차이, 상류층의 허위를 풍자하는 디테일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에 있다. ‘웃음 속에 뼈가 있다’는 말처럼 갑질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기는 통쾌함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상류층과 서민의 고리타분한 사랑이야기도, 혼사를 앞둔 양가의 갈등 이야기도 질리도록 봐왔다. 1회와 2회는 그런 면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냈다. 과연 앞으로 환상의 콤비와 검증받은 연기자들이 어떤 호흡으로 통렬한 풍자를 만들어낼지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