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종전선언 논의 과정 수용…바이든정부 외교 노력 시험대
홍민 “접촉 국면 전개 예상…미 방기 못하고 화답할 수밖에”
靑 “북 대화 메시지 보낸 것…의미 있고 무게있게 받아들여”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이 24일 두개의 담화를 내고 즉각 반응했다. 

이날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롭다”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적대시정책, 불공평한 이중잣대를 먼저 철회하라”며 선결조건을 내걸었다.

사실상 대북제재 해제를 포함해 북한이 '적대시'라고 생각하는 정책을 철혀하라고 한미 양국에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시기상조”라고 표현하며 한미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종전선언 제안엔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종전을 선언함으로써 북한 비핵화 협상의 문을 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북한은 종전선언으로 가기 전까지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턱을 높여 제시했던 대화의 조건을 적용했다.

종전선언은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합의물인 판문점선언에 명시됐으며,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물인 센토사선언에서도 그대로 계승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에 북한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논의 과정을 수용하면서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개최 이후 최근까지 한미가 주장하고 있는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시험대에 올린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일단 수용하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의도를 시험해보는 잣대로 삼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 갈 길이 먼 바이든 정부에 현실적인 과제를 던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에 ‘리태성 담화’ 이후 ‘김여정 담화’가 연속적으로 나온 것과 관련해 “북한지도부가 문 대통령의 제안을 기회로 활용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하고, “조건을 내걸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사실상 종전선언 논의 자체를 수락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사진=연합뉴스

그는 이어 “종전선언은 북한이 2018년 정세 전환 이후 처음으로 요구한 신뢰 조치”라면서 “2019년 9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서 ‘더 이상 종전선언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이후 일각에선 더 이상 가치가 없어졌다는 주장도 내놓았지만 개인적으로 그 가치가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홍 연구위원은 또 “지금 다소 상황이 바뀌긴 했으나 북한은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띠는 행위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북 적대시정책을 시험해보는 잣대로 삼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남북 간, 북미 간 접촉 국면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때 김여정 담화 내용을 수용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북미가 서로를 파악해 보려는 국면은 전개될 수 있다. 미국이 만약 방기하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 북측이 공세적으로 갈 수도 있고, 따라서 상황 관리 차원에서라도 미국도 화답하는 방식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리태성 담화에 이어 김여정 담화가 나온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전처럼 비판이나 무시 일변도가 아니라 우리정부가 선결조건을 적극적으로 마련해달라는 명시적인 요청을 한 점은 진전된 태도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리태성 외무성 부상과 김여정 부부장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알리는 측면도 있지만 종전선언 제안을 계기로 대북적대시정책을 조금이라도 완화해서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돌파해보려는 시도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김여정 담화 등 북한의 반응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YTN ‘더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대시정책 철회라는 조건을 붙였으니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협의 과정과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결과적으로 미국을 향해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그러면서 “오전엔 리태성 부상이 미국에 대해 선제조건을 얘기했고, 오후에 김여정 부부장이 우리에게도 어떤 역할을 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의미 있고 무게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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