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여러가족' 바람 잘 날 없어…소통은 없고 오직 성과만

   
▲ 황근 선문대 교수
지난 2월 24일 국회 미방위에서 3년 가깝게 논란되어 왔던 유료방송합산규제가 의결되었다. 현 정부의 많은 미디어 정책들이 그런 것처럼 이 역시 합리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법안이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유료방송시장에서 급성장해 온 1등 사업자 KT를 견제하기 위한 사업자들간 이해갈등에서 나온 법이기 때문이다.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을 포괄하는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을 33%로 제한하는 것이 IPTV와 위성방송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KT를 막아보자는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잘나가는 놈 잡겠다’는‘반KT 사업자 연합군’들이 요구해 온 전형적인 ‘물귀신 법안’인 것이다.

외형적으로 유료방송합산규제는 여·야 실세 의원들이 발의한 방송법과 IPTV법 개정안 형태로 발의되었다. 그렇지만 당초 해당 정부 부처는 뒷짐 지고 않아 방관하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내심으로는 해당 부처가 어쩌면 더 갈망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이 법안은 사업자나 정부부처 요구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대신 발의해주는 전형적인 ‘위임입법(?)’이었던 셈이다.

이런 순수하지 않은 의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합산규제가 ‘사업자의 자유로운 영업 행위과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사전규제로서 위헌소지’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합산규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부터 지적되었던 부분이다. 실제 지역별 점유율을 제한했던 소주시장이나 특정 신문사의 점유율을 과도하게 규제했던 신문법이 위헌 판정을 받았던 사례도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해당 정부부처의 입장이었다. 유료방송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이전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 왔던 ‘통합방송법 제정’ 차원에서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을 통합 규제하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 KT 기가와이파이를 이용해 고객들이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부담 없이 즐기고 있는 모습. /사진=KT 홈페이지 캡처
그렇지만 사업자간 첨예한 갈등 때문이었는지 의원입법 결과를 보겠다는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작년 말 정부가 추진했던 통합방송법(안)이 별 내용이 없다는 비판에 봉착하고 당장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자, 마치 합산규제에 올 인하는 듯한 태도로 돌변해 버렸다. 마치 유료방송합산규제가 통합방송법의 핵심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현 정부의 간판 정책 창조경제 주체인 미래창조과학부 그것도 방송정책 담당부서가 한 건 해야만 한다는 중압감도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의 정책담당자는 정책적 합리성, 사업자간 균형성 그리고 법리적 적합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한 한다. 그래서 입법과정에서 관련 부처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법제처의 법리적 검토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유료방송합산규제 법안에 대해 그런 절차를 거쳤는지는 솔직히 크게 의문이다. 또 담당자 말대로 의원입법은 그런 절차를 안 거쳐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것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의원들이 제안한 법안이라고 해서 헌법이나 다른 법안들을 초월한 무소불위의 법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부처 역시 이 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또 위헌 소지까지 제기되었던 법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해당부처에서는 이미 2013년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관련 의견을 받았고, 그 내용도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위헌소지가 있으며 특정사업자의 시장지배력 강화로 인한 문제점은 사후규제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만약 이를 담당자가 무시하고 추진했다면 정부 공직기강이 엉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부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관련 부처의 반대 의견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는 특정 부서의 독선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이 헌법에 위배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무시한 심각한 범법행위일 수도 있다. 때문에 이 문제는 유료방송합산규제 내용 문제를 떠나 정부 정책의 합리성과 정당성 그리고 공직자의 기장 차원에서 심각하게 짚고 넘어갈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국회상임위 의결과정에서 유료방송합산규제 개정안에다 ‘지상파방송사 외주제작비율에 있어 특수관계자 제한규정을 폐지’하는 개정조항을 슬쩍 끼워넣어 독립제작사들이 반발하면서 다시 브레이크가 걸려 버렸다. 이 역시 영상제작산업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리되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두 개정 안이 모두 관련부처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글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닮은꼴이 많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역시 신문·잡지 등 미디어광고정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추진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많이 지적되고 있는 소통부재가 정부 부처들간에도 만연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수직 하향적 소통구조가 부처간 수평적 소통구조를 말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조직 효율성은 조직내 수직적·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처럼 수직적 소통구조가 조직을 지배하게 되면, 모든 구성원들은 위만 바라보고 결과 만들어내기에 집착하는 성과주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지붕 여러 가족’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기회에 고칠 점은 분명히 고치고 가야할 것 같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