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역사가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일어난 사실 가운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으로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어야 ‘역사적 사실’로 승격된다.

이 세상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이 역사지만, 이것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저만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아니지만, 유독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사실만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단순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된다는 것은 그 사실을 평가하는 역사적 잣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역사관을 갖느냐에 따라 의미를 갖는 사건은 달라진다. 곧 사건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선별하는 기준이 변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과거를 보고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이다. 그것에 따라 어떤 사건이 개인의 기억에서 집단의 기억으로 바뀌고 집단의 기억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역사의 일부가 된다. 이런 사건 가운데 파독 근로자들이 있다.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대사는, 기록으로서도 파란만장하였다. 우리는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공통의 근대사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의미 있는 공통의 집단적 역사적 기억이 없는 것이다.

특히 역사학계는 통일 지향과 외세 배격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보아, 오늘의 한국을 존재하게 한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제 36년 동안에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된 사람들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나 친일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누가 통치했는가에 상관없이 자기 삶을 열심히 산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건국의 의미가 희석됨으로써 분단 책임론이 거론되었고, 근대화도 민주화에 밀려 올바로 기억되지 않았다. 근대화가 역사에 기록된 것은 근대화의 기치를 든 정치인들이었지 그 시대에 땀 흘려 일한 보통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의 주도권을 엉뚱한 사람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근현대사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해방전후사의 인식』 (1979)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글은 8•15가 주어진 타율적 선물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이 강대국에 의해 얼마나 일방적으로 요리되고 혹사당하고 수모 받았으며 이런 틈을 이용해 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켰는가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자주적이 못 되는 민족은 반드시 사대주의자들의 득세를 가져와 민족윤리와 민족양심을 타락시키고 민족내분을 격화시키고 빈부차를 확대시키며 부패와 독재를 자행하여 민중을 고난의 구렁으로 몰아넣게 마련이다.

민족의 참된 자주성은 광범한 민중이 주체로서 역사에 참여할 때에만 실현되며 바로 이러한 여건 하에서만 민주주의는 꽃피는 것이다.”

이런 역사관에 입각해서 보면 근대화에 긍정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근대화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한 사람’이거나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한’ 결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러한 해석의 오류가 교정되고 있으나 산업화에서 부각된 것은 정치 지도자나 대기업의 CEO였지 일반 시민들은 아니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일한 보통 사람들의 활동은 역사적 의미 부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보통사람들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이해되어 역사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해석에는 아담 스미스가 일찍이 발견하고 설파한 진실이 반영될 수 없었다.

아담 스미스는 역사와 공익의 주체를 개인으로 설정하였다. 그는 말한다.

“각 개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자신의 자본을 국내 산업을 지원하는데 사용하고, 국내 산업의 생산물이 최대 가치를 갖도록 노력할 때,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사회의 연간 수입을 최대한으로 높이는데 노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k interest)을 증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가 얼마나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켰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해외 산업이 아니라 국내 산업의 지원을 선호함으로써, 그는 오직 자신의 안전을 추구한 것이다. 자신의 지원이 최대의 가치로 산출될 수 있는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그는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많은 경우와 같이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 그가 의도한 것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목적을 증진시킨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회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his own interest)을 추구함으로써 그가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실제로 의도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빈번하게 증진시킨다.

   
▲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으로 독일 광산에 일하러 가는 덕수와 달구.
나는 공공의 선(publick good)을 위해 사업을 한다고 가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한 일(good)이 행해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이러한 가장은 상인들 사이에서 흔한 것이 아니며, 그들이 그런 가장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공익에 기여하는가를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건국ㆍ산업화ㆍ민주화를 통해 빛나는 나라로 성장한 우리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들에는 역사적 영웅이나 지도자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온 보통 시민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수의 시민이 아니라 소수의 영웅에게만 관심을 집중한다. 역사는 소수의 영웅에 주목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영화 <국제시장>은 자신에게 충실한 ‘보통 사람들’을 한국 근대사의 주인공으로 승격시켰다. 수많은 사람에게 ‘파독 근로자와 월남 파병자들’을 각인시킴으로써 이들을 개인의 기억에서 집단의 기억으로 승격시켰다. 영화 <국제시장>은 영화가 글보다 강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명시적으로 ‘민족’이나 ‘애국’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에는 인류 보편적 가치나 세계 시장을 향한 열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외국의 일자리’가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기저에는 ‘애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영화는 ‘흥남 부두’ 군용 화물선 위에서 한 중년 남자가 어린 소년에게 내린 ‘명령’으로 시작한다. 어린 소년은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무명 ‘두루마기’와 찢어진 ‘팔소매’를 간직한다. 이 소년은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벗어 입혀주면서 한 부탁과 자신의 잘못으로 놓쳐버린 여동생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무장한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린 운명을 팔자로 여기고 동분서주 살아간다. <국제시장>은 한국의 굴곡진 근대사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아 이긴 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도 나라도 아닌 살아남아 자식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적응해야 한다. 시대를 관통하여 흐르는 공통의 시대정신은 애국주의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윤덕수(황정민)는 필요하면 애국주의에 의존한다. 그는 모래 가마니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강한 근력을 가졌지만, 광부로서의 경험이 없어 파독 광부로 선발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갑자기 빼어든 것이 애국주의다.

광부 경험이 없어 탈락 위기에 처한 윤덕수는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고 애국가를 부른다. 상황은 급전하여 다른 신청자들과 심사관까지 엉겹결에 일어서 애국가를 부른다. 심사자들은 ‘애국심 투철’이라는 부가적 기준을 적용하여 합격 판정을 한다. 애국심이면 모든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심사관의 입장에서는 ‘애국심 투철’이지만 덕수의 입장에서는 먹고 살기 위한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인생막장’이라는 먼 이국의 갱도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해외의 일터를 찾아 나선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올망졸망한 동생들이 굶주린 배를 두들기거나 아니면 학비가 없어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없는 불운한 시대를 탓하지 않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사지나 다름없는 갱도로 들어가고, 병원에서, 죽은 이국 사람들의 몸을 닦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아담 스미스가 말한 ‘공익’에 기여하여 새삼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단순히 자신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 숭고한 행위로 재해석된 것이다.

온갖 개인적 수모를 당하면서 이들이 송금한 돈이 조국 근대화의 ‘종잣돈’이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개인의 소시민적 삶에도 의미가 부여되고,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 서술의 위력이고 이야기의 위력이다.

파독 근로자나 월남 파병 근로자에 대해 개인을 뛰어넘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해야 할 역사적 책무에 해당한다. 그동안 이들의 노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일부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권혁철 소장의 글은 경제적 관점에서 파독 근로자의 국가경제적 의미를 엄정한 사실에 기초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소중한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김승욱 교수의 ‘파독에 나타난 자유주의 사상’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파독 근로자에게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오늘과 같은 토론회를 통하여 ‘대한민국 성공 신화’에 기여한 개인의 활동이 발굴되고, 역사에 기록되고 기억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세미나 <파독근로자 :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