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배려·겸손·지혜…골퍼들이 가져야 마음가짐 고루 갖춰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47)- 골프장으로 간 돌고래

돌고래는 전문가들에 의해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라는 특별한 개념을 부여받은 지구상의 드문 동물 중의 하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철학자 피터 싱어 등은 1993년 세운 '유인원프로젝트'에서 영장류에 대해 생명의 권리, 신체의 자유, 고통을 주는 행위 금지 등의 세 가지 원칙을 내놓았다.

2010년에는 미국의 환경철학자 토머스 화이트 교수(로욜라 메리마운트대 윤리학 전공)를 비롯해 이탈리아 철학자 파올라 카발리에리, 동물행동학자 로리 마리노 등이 '헬싱키그룹'을 결성해 고래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고래와 돌고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으며 서식지와 문화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고래와 돌고래 권리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비인간인격체’란 개념을 제시했다.

용어에 들어간 인격체라는 단어가 우리의 언어관습 상 다소 어색하지만 영장류나 돌고래가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다름없는 인격체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를 계기로 수족관에 갇혀 인간의 노리개 역할을 하는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 확산되었다. 2013년 인도 환경산림부는 "돌고래를 비인간인격체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른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 돌고래를 공연 목적으로 가두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돌고래 수족관 설치를 금지하기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인간들에게 결핍된 칭찬, 사랑, 긍정적 사고 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사실 고래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다소 모욕적이다.
캔 블랜차드 외 3인의 공저로 쓰인 ‘Whale Done’(한국판 제목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은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대기업의 중역이 우연히 돌고래쇼를 구경하다 바다의 포식자인 돌고래가 어떻게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묘기를 부릴 수 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관찰한다. 장시간의 관찰과 조련사와의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고래의 긍정적 행동에 과도한 칭찬과 함께 보상을 주고 부정적 행동엔 외면함으로써 조련사가 고래를 지배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고래들의 이런 특성을 인간사회에 적용해 성공적인 직장인,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처세술을 제시한다.

그러나 장기간 돌고래의 생활습성을 연구해온 해양생태학자나 돌고래의 우아한 미덕에 매혹돼 교감해온 다이버들은 돌고래를 칭찬이나 보상으로 조련할 수 있는 수준의 동물로 취급하는데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해양생태학자도 아니고 전문 다이버도 아니면서 돌고래의 신비한 세계에 매료된 미국의 바비 샌더스(Bobbie Sandoz)의 ‘돌고래에게 배운다(Listening to Wild Dolphine - Learning Their Secret for Living with Joy)’는 돌고래가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갖고 있으며 인간이 본받아야 할 많은 미덕과 지혜를 소유한 신비한 생명체임을 감동으로 전한다.

심리치료사이자 전문카운슬러,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저자가 우연히 한 해안가 호텔 옆 석호(潟湖, 모래와 같은 퇴적장애물에 의해 바다로부터 분리돼 생긴 호수)에서 한 돌고래와 조우해 전율과 같은 교감을 경험한 뒤 10여 년간 세계 곳곳의 바다를 찾아 고래들과 유영하며 직접 체험한 신비로운 경험을 털어놓은 이 책을 읽고 나면 돌고래가 인간보다 한층 우아한 생명체임을 실감한다.

   
▲ 골프는 다양한 메이트와 다양한 코스상황과의 조화, 동반자들에 대한 배려와 친절, 고수의 좋은 기량을 모방하고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골프의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열망, 그러면서도 유머와 익살을 즐길 줄 아는 여유, 그리고 라운드 전체를 관통하는 순수한 마음과 폭넓은 지혜 등은 바로 돌고래의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삽화=방민준
조련사들이 칭찬과 보상으로 돌고래를 조련시켜 묘기를 부리도록 한다는 일반적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도 깨닫게 된다.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란 특별한 용어가 생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저자는 이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치는 돌고래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넘치는 우정과 진심에서 우러난 친절이다. 돌고래는 인간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며 우정과 친절을 표현하는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생명체의 하나다. 기독교의 물고기 표시도 돌고래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전설이나 동굴벽화에 돌고래가 인간과 공존하는 모습이 묘사된 것이 바로 여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둘째, 돌고래는 유머와 익살이 넘치고 고도의 환희상태를 유지할 줄 안다. 돌고래들이 수족관이나 바다에서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수준 높은 묘기를 연출하는 것은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와 환호에 대한 답례이자 기쁨의 표현이다. 관중의 환호가 더욱 클수록 극한의 묘기를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끔 관중들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것도 익살 또는 짓궂은 감정의 표현이다.

돌고래들의 묘기는 인간으로 말하면 환희의 절정에서 나오는 춤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돌고래의 묘기를 조련사가 먹이를 미끼로 훈련시켜 터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얼마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인가. 멕시코 어부들이 돌고래를 ‘친구들(Las Amistosas)’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만하다.

셋째, 돌고래는 모든 존재들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에 속하며 상어보다 강한 꼬리를 가진 돌고래는 꼬리를 쳐서 인명을 빼앗을 수도 있지만 극단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 한 시종일관 조화를 선택한다. 명상에 잠긴 듯한 느릿한 움직임, 나른한 시선은 우정과 공생의 표현이다. 돌고래는 특히 유대관계가 끈끈하고 동반자의식이 강하다.

항상 2~3마리 이상이 집단으로 이동하는 돌고래는 새끼를 무리의 한 가운데 두고 보호하며 이 바깥에 암컷, 수컷 성체는 맨 가장자리에서 무리를 보호한다. 암컷이 새끼를 낳을 때 무리 전체가 산모를 에워싸 보호하고 아픈 돌고래도 같은 방법으로 보호한다. 동료가 죽으면 한동안 무리와 함께 데리고 다니며 이별의식을 치른 뒤 해안가에서 정중한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한다.

넷째, 돌고래는 높은 지능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두뇌가 인간보다 크기도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총명한 지혜의 사용방법은 인간을 뛰어넘는다. 인간은 천재성을 보일 경우 부인하거나 의심하고 논쟁을 하지만 돌고래들은 존경과 호의를 베풀 줄 알고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적극적으로 모방할 줄 안다.

다섯째, 돌고래는 명확하고 진실한 텔레파시를 사용할 줄 안다. 이들은 돌고래끼리 통하는 초음파와 이빨의 부딪힘, 맥박, 휘파람소리 외에 텔레파시라는 탁월한 소통능력을 보유, 동료들은 물론 주위의 모든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이 보내는 신호는 거짓이 없기에 동료들과는 늘 굳은 신뢰관계를 구축한다. 미 해군도 돌고래의 수중음파가 최신형 탐지기보다 정교하고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돌고래의 수중음파 작동원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여섯째, 돌고래는 삶의 면면에 우아한 품격을 유지할 줄 안다. 고결한 자아를 바탕으로 사랑과 동정을 베풀며 이를 복잡한 은유를 통해서까지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발산하는 텔레파시에는 비밀스런 치유력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돌고래의 미덕을 모두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골프를 애호하는 입장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적용한다면 골프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골프 메이트와 다양한 코스상황과의 조화, 동반자들에 대한 배려와 친절, 고수의 좋은 기량을 모방하고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골프의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열망, 그러면서도 유머와 익살을 즐길 줄 아는 여유, 그리고 라운드 전체를 관통하는 순수한 마음과 폭넓은 지혜 등은 바로 돌고래의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애 한번만이라도 돌고래의 미덕을 닮은 고결한 영혼의 골프를 경험해볼 수 있기를 갈망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