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 기자] 3.1절 특집극 ‘눈길’을 봤습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이 몰입했습니다.

사실 위안부라는 소재는 이제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야 한동안 이슈가 될까요, 지지부진한 사과 앞에 조금씩 지쳐가는 모양새입니다. 유명 여배우가 누드화보 소재로 사용했을 때, 개그맨이 공개적인 망언을 했을 때 더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분노하기보다는 슬펐습니다. 꼭 저만한 아이들이 실제로 끌려가 고된 시간을 보냈고, 그 충격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그리고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슬플 수 없었습니다.

누구는 이들을 빌어 시대를 탓하기도 합니다. 당사자를 탓하며 ‘강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반면 매주 수요일마다 차벽으로 둘러싸인 일본 대사관 앞에서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잊고 싶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니까요. 남은 53명 할머니는 그 증인이고요.

   
▲ KBS1 '눈길' 방송화면 캡처

2년 전 한류 뮤지컬 취재차 도쿄에 갔을 때 SNS를 통해 한 일본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개인적인 만남이라 조심스레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징용을 다녀오셨다”하니 본인 할아버지는 가미가제 특공대로 차출됐었다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징용 피해자의 손자와 가미가제 피해자의 손녀는 앞에 놓인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꺼낸 말이 “같은 피해자임에도 당신 할아버지는 존경받고 우리 할아버지는 잊혀졌다”는 정도였죠.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잊혀 가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공간은 늘어나고 있으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외로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고, 진실을 말하는 이들은 일본 우익단체에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0년 전 국가보훈처에서 대학생기자들을 선발해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731부대에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본관에서 잔인한 고문장면을 인형으로 묘사한 공간들을 지나니 출구 앞에 수많은 피해자들의 이름이 석판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 끝에 김씨와 이씨, 박씨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부르르 떨며 한참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기억은 그렇게 공포에 의해 각인되나 봅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려했던건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길’은 꼭 필요했고, 참 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잔인하지도 않게 위안부 피해자의 과거와 오늘을 그려냈습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오랜만에 KBS가 공영방송다운 역할을 해냈습니다.

   
▲ 사진=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매주 수요일 할머니들은 기꺼이 일본 대사관으로 향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달라지는게 많아서일까요, 아니면 자존심이 상해서일까요. 오늘도 그들은 우리 경찰병력으로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막아설 겁니다. 그들은 대신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하겠죠.

최근 독일 뮌헨 외곽에 있는 다하우 수용소에 가봤습니다. 독일은 아우슈비츠에 버금가는 이 유대인 수용소의 막사와 가스실, 시체 소각장 등을 그대로 남겨 학살과 반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과를 이끌어 내고 있었습니다. 같은 방향을 걷던 독일인과 번역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독일의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결론이 맺어졌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나치’라는 이야기만 들려도 경악하고 사죄하며 지난날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태도가 언제쯤 변할지, 아니 변하기는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3.1절도 광복절도 독립투사가 떠오르듯 일제와 맞선 사람뿐만 아니라 피해자들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국가가, 가족이 우리를 지켜야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이죠.

복받치는 슬픔에 이제는 그분들을 직접 만나 기록하고 기억하는데 동참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브라운관에 비친 열다섯 소녀의 눈이 꼭 그래달라 부탁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두가 고작해봐야 우리 할머니 세대의 일’ 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