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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걷기] 한양관문길
서울에서 영.호남으로 가는 옛 길의 관문(關門)
승인 | 윤광원 취재본부장 | gwyoun1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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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1-10-16 07: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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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로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삼남대로(三南大路)였다. 한양에서 경기도, 충청도를 거쳐 왼쪽으로 전라도 해남, 오른쪽은 경상도 통영에 이르는 큰 길로, ‘의주대로영남대로와 함께 조선 육로교통의 중심 축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의 저서 도로고(道路考)에는 6개의 간선도로가 나온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는 6개 길이 모두 지난다.

이 도로고의 기록을 바탕으로, 경기도가 재현한 장거리 도보 트레킹 코스가 경기옛길이다.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 ‘평해길’, ‘경흥길강화길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먼저 개통된 것이 삼남길이다. 옛 삼남대로 중, 경기도 관내에 해당하는 코스다. 서울과 과천의 경계인 남태령 고개에서 시작, 과천.안양.의왕.수원.화성.오산.평택시를 지나 충남과 접하는 평택 안성천(安城川)에 이르는, 90.1km의 길이다.

경기도와 시민단체, ()코오롱스포츠의 합작품으로, 지난 201210월 수원.화성.오산 구간을 시작으로, 20135월 삼남길 경기도 내 전 구간이 정식 개통됐다.

전체 10개 구간으로 이뤄진 이 삼남길의 제1길이, 바로 한양관문(漢陽關門) 길이다. 이름 그대로, 삼남지방에서 한양(사실은 지금의 서울특별시)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관문 같은 구간으로, 9.7km짜리 코스다.

이 한양관문길을 걸어본다.

   
▲ 옛 과천현의 객사였던 온온사. 정조가 여기서 쉬면서 현판 글씨를 썼다./사진=미디어펜

지하철 4호선 남태령(南泰嶺) 역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2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과천대로가 뻗어있다.

큰 길을 따라 작은 사찰 정각사앞을 지나면, 삼남길 제1길 한양관문길 안내판이 있다. 이어 서울시계인 고갯마루를 넘으면, 곧 왼쪽에 남태령 옛길표석(標石이 보인다.

차들이 달리는 대로변 아래쪽에, 옛길이 숨어있다. ‘관악산 둘레길의 일부다.

이 길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보 길이었다. 여기를 지나 수원, 안성을 거쳐 남쪽으로 갔고, 반대쪽에선 남태령을 넘어 지금의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을 거쳐 노들나루’, 즉 노량진(鷺梁津)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입성했던 것.

원래 이 고개는 여우고개’, 즉 호현(狐峴)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정조대왕이 화성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화성 융릉으로 행차할 때 여기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차마 임금께 이런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쪽의 첫 큰 고개라는 의미로 남태령이라 아뢰었고, 이 때부터 이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대로와는 딴 세상처럼, 옛길은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루고, 차량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옆 시냇물 소리가 더 잘 들릴 때도 있다.

얼마 안 가 숲길은 끝나고, 마을길로 이어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전원마을이다. 집들도 깔끔하고 예쁘다. 중간 쉼터에는, 3.1운동 당시 독립만세(獨立萬歲) 시위가 벌어졌음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있다. 왼쪽 멀리서, 청계산이 손짓한다.

다시 큰 도로와 재회한다. 인근에는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을 기리는, 추사박물관이 있다.

관문사거리직전, 대로를 건너 1방공여단옆 편의점을 끼고 돌아, ‘과천3마을길을 오른다. 하천변으로 고급 주택가가가 이어지다가, 곧 물 맑은 계곡길이 나타난다.

제법 수량이 많고, 징검다리도 놓여있다.

관악산 둘레길은 계곡 건너 능선(稜線)을 따라, ‘간촌 약수터로 이어진다. ‘과천숲길과도 겹치는 구간이다. 하지만 삼남길은 낮은 고개를 넘어 내려가, 다시 과천대로와 만나게 된다.

대로 건너편이 관문체육공원이고, 과천성당(果川聖堂) 앞을 지나 오른쪽 이면도로로 들어서면, 왼쪽 주택가에 지난 2008년 개봉했던 윤계상, 김하늘 주연의 멜로영화 ‘6년째 연애 중촬영지 안내판이 보인다.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온온사(穩穩舍)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들어서면, 수령 600년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나무 둘레만도 6.5미터가 넘는다. 나무 그늘엔 조선시대 역대 과천현감(果川縣監)의 송덕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안 쪽에 있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인 온온사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客舍).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공무로 관리들이 들렀을 때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온온이란, 경치가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의미다.

특히 온온사는 1790년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모신 융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머물렀던 곳이다. 정조는 바로 옆 과천 관아를 부림헌(富林軒), 객사는 온온사가 이름 짓고 친히 현판 글씨를 썼다.

지금도 온온사에 걸려있는 현판과, 건물에 보존 중인 부림헌 편액이 정조의 어필(御筆)이다.

옛 과천현 관아는 초석조차 남아있지 않은 빈 터다. 그 앞 45도로 기울어진 향나무, 뒤편 대나무 숲이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과천시 중앙동 주민센터도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서니, 곧 관악산 등산로 입구 계곡이 보인다.

그 바로 오른쪽에 과천향교(果川鄕校)가 있다.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호로, 조선 태조 7년 처음 설립됐고, 지금의 건물은 숙종 16(1690) 이 곳으로 이전하면서 세워졌다고...

향교 입구 홍살문 옆에도, 느티나무 보호수(保護樹)가 있다.

계속 길을 따라간다. 가로수로 심은 밤나무에서, 토실토실한 밤송이와 알밤들이 길바닥에 꽤 많이 떨어져 뒹군다. 한 두 개만 주워도 횡재한 기분이다.

삼남길은 왼쪽 아파트단지 앞에서 우회전, 과천시청과 정부과천청사(政府果川廳舍)로 이어진다. 청사 끝에서 좌회전했다가, 한국수자원공사 앞에서 다시 오른쪽 대로를 따라 걷는다.

갈현삼거리에서 우측 이면도로로 들어서면, ‘줄타기의 본향(本鄕) 과천이라 새긴, 검은 돌비석이 나타난다. 과천에서 전승되는 재인(才人) 계열의 전통 줄 놀음과 광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옆에는 줄타기 초대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인 김영철(金永哲) 선생 기념비도 보인다.

그 뒤는 가자우물터다.

   
▲ 정조가 물 맛이 좋다며 우물에 ‘가자’ 벼슬을 내렸다는 ‘가자우물터’/사진=미디어펜

찬 우물이라고도 불렸던 가자우물은 정조가 융릉으로 행차하던 길에 목이 마르던 차, 이 우물물을 마시고 물맛이 너무 좋다면서, ‘당상관에 해당하는 가자(加資) 벼슬을 내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지금은 아쉽게도 물이 말라, 폐쇄됐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다시 인덕원으로 향하는 대로로 나왔다.

도로 오른쪽에 고() 김승철(金承鐵) 중위 전사지 안내판과, 충혼비가 숨어있다. 19506월 한국전쟁 당시, 김 중위는 국군 제7사단에 배속돼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는 전투에 참전, 이한림 장군의 부관으로 상관을 보위하다가, 이곳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충혼비를 뒤로 하고,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오른쪽으로 관악산(冠岳山) 전체가 파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갈라진 이면도로를 만났다. ‘국군지휘통신사령부표지판을 지나는 곳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머지않아 안양시(安養市)로 들어선다. 이젠 안양시 관양동이다.

조금 걸으니, 왼쪽으로 반가운 흙길이 나타났다.

그 길 나지막한 언덕마루 왼쪽에 있는, ‘안양시 향토문화재 제6관양동 청동기유적을 놓쳐선 안 된다.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마을 유적으로, 집 자리 8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땅을 파서 만든 사각형 반 움집들로, 기둥 설치를 위한 구멍과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됐다.

또 다양한 형태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과 간 돌칼, 갈판 및 갈돌, 가락바퀴 등이 출토됐다.

유적 바로 옆은 조선 제9대 성종의 제8왕자(서자)인 익양군(益陽君) 후손들이 묻힌 중중 묘역이다. 익양군의 증손자 덕림수가 이 곳에 정착, 집성촌을 이룬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언덕길을 내려가면, 비닐하우스가 있다. 거기서 우회전, 조금 가면 대로가 나온다. 그 너머에, 지하철 4호선 인덕원(仁德院) 역이 있다.

인덕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환관(宦官)들이 은퇴 후 여기 내려와 살면서, 주민들에게 어진 덕을 베풀었다고 해서 인덕이라 하고, 마침 이 근처에 관리들의 숙식용 국가 여관인 원()이 있어서, 이렇게 불렸다고 전해진다.

통상 원이 있던 곳은 관원들의 왕래가 많은 곳으로, 지명에 이 붙으면 예나 지금이나 교통요지에 해당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15975, 충무공이 인덕원에서 쉬어갔다고 한다.

특히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능 참배 시, 여섯 차례나 인덕원 길을 지나갔다는 원행정례의 기록이 있다. 인덕원역 6번 출구 안 골목길에는 이런 역사를 알려주는 화강암 비석과 별도로, ‘인덕원 옛길석비도 따로 있다.

인덕원 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면, 서울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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