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매년 이 무렵이 되면 꼭 체크하는 자료가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구당(2인 이상) ‘도서구입비’ 항목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1년 동안 책 사는 데 얼마나 돈을 썼을까.

2003년 발표된 자료에서 월 평균 2만6346원을 기록한 이 수치는 2011년 2만570원, 2012년 1만9026원, 2013년 월 1만8690원으로 하락하더니 2014년에는 1만8154원까지 떨어졌다. 매년 하락을 반복하다 보니 전년 대비 얼마가 떨어졌다는 멘트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언론이 이 숫자들을 활용하는 방식에도 어느새 패턴이 생겼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이 빵 사는 데 쓰는 돈보다 적다거나, 신발값보다 적다거나,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안 사는 셈이라거나 하는 식의 비유법들. 그러나 여기까지다.

대다수의 언론이 도서구입비를 가지고 뉴스를 만드는 건 ‘안 산다’는 메시지 한 줄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자조라 해야 할지 비관이라 해야 할지 미묘한 느낌의 스트레이트 기사 한 토막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은 어떨까. 그들의 경우엔 ‘한국인들이 책을 안 산다’는 사실을 그저 단순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존재 자체가 출판산업의 ‘진흥’을 위한 곳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허나 ‘진흥원’이 진흥해서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출판업계를 향한 ‘진흥책’들은 사실 이미 많다. 책값을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도서정가제(개정안), 1년에 1000권 가량의 추천도서를 선정해 전국 도서관에 배포하는 세종도서, 신생출판사 창업지원, 중소출판사 청년인턴 지원 등 대단히 다양한 지원 사업들이 세금으로 집행되고 있다.

   
▲ 책 안 읽는 대한민국. /SBS 캡처
어떤 책이든 일단 읽게(팔리게) 하는 게 목적이 되다 보니 ‘퀄리티’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반(反) 대한민국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을 대한민국 정부가 추천해서 유통시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자주 벌어진다. ‘종북 논란’ 신은미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경우 얼마 전 우수교양도서에서 취소되는 일이 있었지만, 추천도서가 지금처럼 남발되다 보면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출판산업 진흥책이 갖고 있는 맹점은 또 있다. 출판산업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상당수 지원책들은 문인(지망생)들과 문학 출판사를 주된 대상으로 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련의 지원 사업이 한국 문학계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암묵적인 담합과 독점의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출판산업의 부진과 침체에 대해 논하기 전에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한국의 문학작품들 안에는 과연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세금 지원을 받아도 될 정도의 가치가 존재하는가?

한국 소설이 묘사하는 세계라는 건 어느 틈엔가 천편일률적인 잿빛 풍경 밖에는 없게 돼버렸다. 주인공들 상당수는 편의점 알바 아니면 백수다. 작가들은 주로 그들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묘사하는 자의식 과잉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몇몇 거시적인 담론을 펼쳐보겠다는 작가가 나온들 5‧18, 전태일, 민주화 등의 소재 주변을 맴돌 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평론가들은 이토록 비슷비슷한 작품들 안에서 그 나름의 차이점과 의미를 찾고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일련의 시나리오에 따라 결론을 정해두고 연기를 하는 ‘역할극 배우들’ 같다.

한국 문학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의 상실은 독자들을 ‘읽기’ 그 자체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행되는 출판문화산업에 대한 각종 진흥책은 출판계와 문학계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편향과 기득권들에 대한 보호막이 될 뿐이다. 지원책들이 늘어남에도 도서구입비가 매년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결국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지금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